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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ug 19. 2016

[달쓰반] 30편/영화 <부산행>과 <터널>(스포주의)

한국형 재난 영화에서 관객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인물들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30

※ 주의 : 이 리뷰는 영화  <부산행>과 <터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여름은 한국형 재난 영화가 강세이다. <부산행>은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최근 개봉한 <터널>도 흥행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8월 19일, 금일 기준으로 390만 이상의 관객이 

터널을 관람, 4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나 역시 이 두편의 영화를 모두 극장에서 보았다. 

 

<부산행>과 <터널>은 

엄청난 재난을 불러일으키는 한국 사회의 무능력한 시스템에 대한 

직, 간접적인 은유가 녹아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극장을 나올 때 생각났던 인물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부산행>에서는 끈질기게 주인공인 김석우(공유)를 따라오던 노숙자,

<터널>에서는 이정수(하정우)에게 계속 물을 요구하던 민아의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이 두 인물은 관객 스스로 치졸해지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걸리적거리는 노숙자는 좀비 군단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계속 따라오고, 


민아는 생명수 같은 생수를 계속 요구한다.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요,"라면서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탱이)에게도 물을 나눠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부산행>과 <터널>의 주인공들은

속마음은 어찌되었건 간에 이들과 함께 가려한다.


두 영화의 감독은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을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자, 당신이라면, 본인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겠는가?



전반부에서 주인공들의 갈 길을 방해한다고만 생각했던 

<부산행>의 노숙자는 후반부에서

숭고한 희생으로 수안이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비교적 덤덤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던 

<터널>의 이정수는, 민아가 죽은 뒤 

패닉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홀로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수에게 

민아의 존재는 또 다른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정수의 소중한 케이크와 생명수를 먹어치운 

탱이는 민아가 죽은 뒤,

이정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탱이는 이정수에게 개 사료도 나눠준다.


이정수가 하도 개 사료를 맛있게 먹어서,

나는 포장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정말 비스킷인줄 알았다.


"니들은 간을 안하는구나."라는 이정수의 대사에서

먹방 레전드 배우의 클래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행>과 <터널>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영화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보니,

인물 간의 갈등이 단조롭게 처리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두 감독이 노숙자와 민아를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내가 지니고 있는 편견, 

그리고 진정한 휴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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