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 글을 기다려주진 않는다
1.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브런치스토리로 신청한 작가로 승인되었고,
2회차의 '글쓰기 강좌'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했다.
목요일에 강의실 컴퓨터와 빔프로젝트가 고장나서 수업을 일찍 끝냈고
덕분에 친구인 예비군동대장과 점심식사에 커피를 하고도 30분이 남았다.
어제밤 허리통증이 갑자기 생겨, 글쓰기강좌와 겹쳐있는 수영을 하지말까 생각했다.
커피마시고 한가로운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를 툴툴털고 일어났다.
글쓰기 강사의 "오셨네요..."라는 목소리가 떠오르자
갑자기 허리가 괜찮아졌고, 수영장이 도서관보다 훨씬 가깝다는 기억이 났다.
2.
생각해보면
그 강사가 이야기했던 "7분밖에 남았는데..... 오셨네요"같은 말과 대우를 종종 받았던 것 같다.
얼마전 방학중에 대학 홈페이지에 신년이라고 구내식당에서 떡국과 다과를 마련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친절하게도, 편하게 시간중에 아무때나 먹고가라고 안내가 되어있었다.
신년 행사를 30분정도 할 것을 기억하고 안내받은대로 천천히 구내식당에 갔다.
사람들은 미어터지고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리뛰고 저리뛰며 서빙을 하느라
내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낯이 익은 교수협의회 부회장님이 있어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직책이 적힌 명찰이 조금 여유있는 자리의 주인을 나타내고 있었고
명찰이 없는 자리는 콩나물 시루처럼 빡빡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한무더기 콩나물 중의 하나가 되어 꾸역꾸역 먹었다.
3.
페**북과 인***램을 시작한지는 꽤 되었다.
아직도 사용법을 잘 모르겠다.
남들은 수만명의 팔로워가 있고
좋은 식당을 찾았다고 글을 게시하면
수백개의 반응이 전해진다.
나는 소소한 딸과의 일상을 올리고
찐친 열댓명이 잊지않고 '좋아요'해 준다.
딱히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
수업에 들어갔다.
군사사상가들과 민군협력, 남북협력과 통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부시럭부시럭 햄버거 봉지를 까서 먹는 소리가 들린다.
군사학과에 학군단인 3학년 최00는 여전히 철이 없다.
유니폼을 입고 매너없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훈계를 해 보지만
그 학생은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4학년 서00은 유니폼을 입고 그러면 안된다고 자신이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서00 학생은 오후에 학군단 수업이라고, 학군단 숙제를 펼쳐놓고 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딱히 내 수업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
대신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소비해야 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좌이체를 한 후
아이들의 가정통신문을 읽고 서명을 한다.
뿔뿔이 제방으로 들어가고 난 거실에서 TV를 본다.
일들이 끝나니 딱히 내가 필요하지는 않은것 같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막내딸만 재워달라고 찾는다.
아빠가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초등학교 이하의) 막내딸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수시로 필요하기 때문인것 같다.
막내딸은 일어날때, 밥먹을때, 양치할때, 유치원갈 때 내가 필요하고
유치원에서 돌아왔을때, 밥먹을때, 양치할때, TV보는 것과 간식먹는 것 허락받을때, 잘때 또 내가 필요하다.
중학생에 사춘기인 첫째딸은 가정통신문과 성적표 서명받을때, 용돈받는 날에만 내가 필요한것 같다.
4.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내 SNS에서 많은 팔로워가 없는 것처럼,
강의실에서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학생처럼,
집에서 경제, 서명 등 가장에게 일을 본 후 들어가는 가족처럼...
하지만 글 쓰는 것은 즐겁다.
오래된 일기를 나중에 읽는 것처럼,
'찐친' SNS에서 웃음이 터져버린 것처럼,
수업내용을 이해시킬 재미있는 애피소드를 다운받는 순간처럼,
시도때도없이 나를 찾는 막내딸이 사랑스러운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