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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는 법

- 끝날 시간에라도 오는게 더 힘들다 -

by 한나보라빠


끝날 시간에라도 오는게 더 힘들다

1.

지금이라도 가는게 나을까.

항상 내 욕심이 문제였다.

강의도 해야하고, 식사도 같이 해야하고, 건강 때문에 수영도 해야하고

어렸을때부터 하고싶던 글 쓰는 일도 해야 했다.

수영끝나니 오후 3시. 신청해두었던 글쓰기 문화강좌는 2시부터 네시까지여서

2시부터 3시까지인 수영을 끝내고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화근이었다.

그마저도 식사약속이 늦어져 2시 20분에 들어갔다.

잠깐 고민후, 앞으로 매주 고민할 거라면 오늘 조금이라도 듣고 결정을 짓자 하였다.



2.

나름 열심히 달려 3시 23분에 강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사 분과 눈이 마주쳤다.

“7분 남았는데..... 오셨군요”

늦은 환영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조금 고까웠다.

나도 여러번 고민하고 어렵게 왔는데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 강의 끝날때쯤 들어온 학생이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 했더라?

출석인정을 해줄 것인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학칙상 지각으로 인정될 수 없었지만

성의가 괘씸해서 과제제출하면 인정해주기로 했던 것 같다.

목례하고 뒷 자리에 앉았다.


3.

“글은 계속 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죠, 영국 여자 작가...... 그분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죠.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군요....”

저런, 예상치 못한 나의 등장(?)에 강의 흐름이 깨졌나보다.

대답해주고 싶지만, 나도 강사처럼 “버.....” 입에서만 맴돈다.

“버지니아 울프” 수강생 누군가가 조용히 읊조렸는데, 강사는 잘 들었나보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신의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정리해 놓으면 됩니다. 연세대 김정훈 교수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죠. 글쓰기는 편집이다. 맞습니다. 의식의 흐름을 블로그나 일기장에 적어놓았다가 모아서 편집하면 하나의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그렇게 출판된 책이구요, 베스트셀러 9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저는 전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흐름을 찾았다. 조금 미안했는데 다행이다.

“우리 강의 과정이 끝나고나면, 쓴 글들을 모아서 브런치 작가로 지원해 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작가 데뷔하는 걸로 강좌를 진행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번 주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한명이 강단으로 가서 이야기를하고, 열댓명의 수강생이 우르르 나갔다. 나갈까 그러다가

난 수업시간에 남은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넷던게 생각이 나서 잠깐 앉아있었다.

강의계획서에는 이번 시간에 펠릭스 바로통이라는 프랑스 화가 겸 작가의 이야기를 이번 주에 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글을쓰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복습? 펠릭스 바로통이랑 버지니아 울프를 검색하고 있는데,

“다음 강좌가 혹시 있으신가요?”

둘러보니 모두 다 나갔고 강사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요 하면서 짐을 챙겼다.

“오늘 너무 늦게 오셔서요.” 네, 일정이 안맞아서... “다음 주에는 오시나요?” 글쎄요... “네, 안녕히 가세요”네 수고하세요. 불편한 대화가 오가고, 나는 맨뒤 책상에 있는 출석부에 서명을 하고 내쫓기듯 나왔다.

만약 ‘이번주에는 펠릭스 바로통이라는 화가 겸 작가의 이야기를 했어요. 한번 살펴보시고, 우리 다음주에는 많은 시간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다음주에는 수영을 가지않고 강당에서 강좌를 들을 결심을 했을 것 같다. 조금 섭섭한 것 같다.


4.

수영을 포기하고, 점심식사 후에 커피를 안마시면, 제시간에 올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면 강사분이 만족했을까?

하지만 난 비만 2단계에 고지혈증이라 건강이 우선이고, 학과 교수님들과의 차담(茶啖)이 직업적으로(?) 더 중요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수영 끝나고 한번 더 고심하고, 갈등했다.

그냥 오지말까 하다가, 지금처럼 오는게 더 어려웠다고 생각이 든다.

브런치 작가라


5.

난 글쓰는 걸 좋아했다.

중학교때 백일장에서 시詩 분야 당선을 하고 재능이 있다고 믿었었다.

윤동주의 서시와 대부분의 시를 외웠고 공감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교육열은 나를 형과같은 D외고에 가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어과라고 했다. 어머니 또래의 여성들에게 최고의 외국어는 프랑스어였다.

물론, 한국어과나 국어국문학과가 외고에 있을리는 없었다.

대학교 3학년 프랑스문학에서 갸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창조적 자아를 배우기 전까지

프랑스가 좋아지지 않았다.

국어국문학과 등으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난 내신이 좋지 않았다.

어문학과 특혜를 받기위해 H외대 프랑스어과를 들어갔다.

대학에는 유명한 글쓰는 동아리가 있어서 가입하였다.

3주를 나갔으나 내내 막걸리를 마시고 주정을하는 낭만이 싫어 나왔다.

군대를 갈 시기가 되어 학군단을 선택했다.

비슷한 복무기간에 월급도 많이 주고, 리더십도 배양되고, 취업도 유리하다고 했다.

그후로 가끔 글을 끄적이며 가슴을 달래며 살았다.

동기인 A는 공인중개사를 하다가 수림문학상 장원을 하며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우린 별로 친하진 않았고, 나는 장교로 연금수혜를 확정하였을 때였다.

A는 내가 군생활을 한 만큼 글을 써 왔고,

내가 업무에 치였던것 이상으로 문학을 고민해 왔다.

아... 쌓인 시간이 다르구나....

난 박사과정에서 한창 논문을 쓰며 대학에 어플라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외벌이였다.


6.

지방대학 군사학과에 임용되고

3년차에, 벚꽃이 늦게 피는 대학으로 옮겼다.

여기는 서울과 가까운 준 수도권인 도시여서

문화적으로 재정적으로 여유있는 곳이었다.

우연히 도서관 문화강좌 신청을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신청했다.

첫 강좌에 아직 건강과 직장이 우선이라

고민하다가 아주 늦게 들어와서

환영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끝날 시간에라도 오는 게 더 힘들다.


정신없이 글을 쓰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더 힘들었지만


오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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