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그냥 사람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이해하려 애쓰지 말라는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힘든 순간 그들을 존재하게 해 준 귀하고 아픈 지혜의 말이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의 언어로는 이런 모욕, 이와 같은 인간의 몰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거의 예언적인 직관과 함께 현실이 우리 앞에 고스란히 정체를 드러냈다.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보다 더 비참한 인간의 조건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34p)
인간의 의도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 그 행동의 주체를 수용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02p)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을 기록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 인가와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다. 무서운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는 두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아직도 소수를 향한 다수의 폭력은 진행형인 것일까. 나 또한 눈 감고 귀 닫은 공모자라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작가의 말)
이 것은 지속가능한 벽관이다. (34p)
나 좀 데리고 가주면 안 되것소...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을 부딪쳐 살아냈고, 힘들게 얻은 자유를 사랑했다.
온몸을 던져 살아온 10년 동안 '시설수용'일변도였던 장애인 정책에 균열이 생기고 '탈시설-자립생활'이라는 새롭고 정의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54-56p)
들으려 하지 않고 도망가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오고야 만다는 것을 두 권의 책은 따끔하게 일깨워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고민이 깊어진다. 앎 이후 다가오는 행동이라는 거대한 벽. 나의 생명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무언가를 파괴하고 소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다수에 속한 나는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 그리고 그만큼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폭력만이 길인가? 이 질문을 품기로 했다. 아파도 보고 듣고 품어내야 하지 싶다. 그럼 길이 보일 것 같다.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길.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34p)
그들은 약한 몸을 드러내어 자선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 그대로를 인정받는 새로운 권리와 정당한 예산을 요구해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61p)
우리에겐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58p)
슬프고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가 흐르고 이어져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모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주어서 감사하게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꿈을 꿀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과 지知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174p)
내가 처한 가난과 차별이, 거대한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수록 차라리 모르고 싶고 달아나고 싶다. 이미 힘겨우므로 싸우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먼저 낸 사람들로부터. 모두를 공모자로 만드는 이 세계에서, 앎은 우리를 앓게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앓으며 세계를 바꿔왔다... 그것은 다시, 묻고는 물러서지 않는 사소한 용기이므로 우리는 더 사랑하고 싶어 진다. (261p)
레비가 피콜로에게 "이 거대한 무언인가를, 어쩌면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오늘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라고 다짐하며 기억 속 오디세우스를 노래할 때 나도 그의 아름다운 오디세우스를 들었다.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를 덮쳤다.(177p)
마침내 아름다운 아픔이 나를 덮쳤다.
더 앓아야지.
더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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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humann:
Kinderszenen, Op. 15 - 7. Träumerei
(Pf.) Clara Hask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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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책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