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의 숨 & 필립 케니콧 피아노로 돌아가다.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이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헤어질 결심 中
숨을 함께하는 사이, 지극한 사랑이다.
나의 들숨과 날숨도 힘겨운데 상대의 호흡을
느끼고 맞추어 가는 사이라니 아름답다.
깨어있을 때도 숙면을 취할 때도 숨은 중하다.
그 중한 숨이 멈추는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애도의 시작일 것이다.
이렇게 썼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 인가.
숨을 멎은 대상이 조건 없는
애정을 주던 큰 산 같던 아버지라면,
혹은 나를 사랑했지만 변덕스럽고 잔인했던
애증 가득한 어머니라면
받아들이는 시간은
받은 감정의 크기만큼 오래 걸릴 것이다.
구본창은 자신의 작업의 흐름을 바꿀 만큼 아버지의 떠남을 애도했다. 아버지의 숨을 담은 사진은 그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숨까지 멎게 한다. 흑백으로 클로즈업된 이미지에는 멈춤의 에너지가 꽉 채워져 있었다. 내가 쉬는 숨은 그 사진을 보기 전과 후로 달라졌다. 나에게 그 사진은 하얀색으로 남아 있다.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색. 하얀색.
피아노로 돌아가다의 저자 필립 케니콧은 바흐의 샤콘을 들으며 숨이 잦아드는 어머니 곁을 지켰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필립은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습하면서 어머니를 객관화하고자 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사랑하면서도 늘 화가 나 있었고 불안하고 우울해했다. 이해하기 힘든 골드베르크를 반복하며 이해하기 힘든 어머니와의 과거를 복기했다. 결국 아들의 눈으로 어머니를 객관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회한에 가득 차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폭언과 알 수 없는 화를 분출시키던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모순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골드베르크를 만족스럽게 연주할 수 없어도 회피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칠 수 있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완벽한 연주도
완벽한 이해도 해낼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한다.
애도가 단순한 절망이나 슬픔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운 한 부분이라는 것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이중성과 모순이 있다는 것
피를 나눈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조차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며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몸으로 느낄 때
애도는 하얀색으로 채워진다.
구본창도, 필립도 그리고 나의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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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 : Goldberg Variations
(Pf.) Glenn Gould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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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책일기인 듯 사진 일기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