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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Oct 24. 2021

어떤 고백

아이를 품고 있던 열 달이 떠오른다.

첫아이다 보니 태교도 하고 좋은 음식도 챙겨 먹으며 조심하던 그때.

막상 아이가 뱃속에서 나왔을 때의 당혹스러움도 기억난다. 태반이 덕지덕지 붙어 눈도 뜨지 못한 덩어리가

간호사님의 두 손 위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부풀어 있어 원래 이런 건가 잠시 의심도 했다. 누굴 닮은 건지 열심히 머릿속을 뒤졌던 것도 같다. 그것도 잠시.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분만실 어딘가에서 작은 울음소리를 내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정말 작은 생명체만이 낼 수 있는 기척, 그 생명체의 냄새, 촉감,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자다가도 소스라치게 깨 아이를 살피고, 울음에 대답하고 이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분석해냈다.


뱃속의 아이를 만나는 즉시 사랑에 빠진다고들 한다. 흔히들 말하는 모성애가 샘솟는다고.

전설 같은 이야기다. 나로선 사랑이 들끓기보다 '살려야 한다'라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너무 여려서, 너무 작아서,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빨간 경고등만 삐유삐유 울려 퍼졌다. 사랑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작던 꼬물이에서 일곱 해를 보내게 된 아이를 떠올려 본다.

간신히 내던 옹알이는 나보다도 우렁찬 목소리로 변했고 공기 같던 움직임은, 야무지고 힘찬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쩌다 발버둥 치는 발차기에 맞으면 으악 소리가 난다. 매 순간 아이가 아주 많이 컸음을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내 안에 따뜻한 마음이 가득 찬다. 그제야 내 안에 사랑이 생겼음을 확인한다.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니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걸까.


긴 터널 같은 신생아기를 지나, 파도와 같은 유아기를 지나, 학령기를 바라보는 일곱 살 내 아이를 비로소, 나와 분리된 한 어엿한 존재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그리고 간혹 가다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오기도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한 사람으로서 내게서 다채로운 감정과 마음을 일으키는 너라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게로 와줘서 너무 커다란 행운이라고,  내 품 안에 안겼을 때 다 품지 못할 만큼 커진 몸처럼 커다랗고 벅차다고 생각한다.


생일 축하해, 나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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