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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Oct 24. 2021

언어에 대하여

7 아이가 어른의 마음에  가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쁜 의도는 없고 순수하지만 걸러지지 않은 직설적인 마음들의 표현. 머릿속 단어가 증발하고 있는 마흔 언저리의 엄마와 나날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아이와는 양식과 자연산처럼 신선도에 차이가 난다. 당연히 기억력도 좋지 않다. 기억에 관한 대화는 추억이랑 연결되곤 하는데 마치 자신과 나눈 상황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살짝 심술이  아이가 말한다.

'그러면 엄마 머리가 아주 딱딱한 돌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평소 이에게 머리를 말랑하게 둬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아주 고민이 많아, 아가.


언어는 육아에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질과 양에 따라 그것이 소통이 되기도, 사랑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 나는 그 많은 '언어'들 대부분을 하얀 일기장에 시커멓게 적곤 했다. 소통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촘촘히 쓰인 글씨 사이로 증발했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려운 어른이 되었다. 내 아이에겐 달리 해야지, 하며 특별히 신경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째가 말이 느리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다른 표현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 첫째와는 달리 과묵한 둘째. 게다가 아이가 많이 아플 거 같아서, 첫째의 유치원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기관에 보내지 않았더니 시기를 놓쳐버렸다. 뒤늦게 어린이집에 상담을 가자 양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언어검사를 권한다. 또래보다 많이 늦다는 평가. 등원을 준비하며, 아이를 불러봤다. 대답이 없다. 등 돌리며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 언제부터 아이는 저 등을 보여줬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등을 얼굴처럼 보여줬고 나 역시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혼자서 잘 노는 아이. 세상에 저절로 홀로 노는 아이가 있을까.


아이가 느리다는 걸 알고부터 세상이 변했다. 태도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평소에 서툴던 부분들을 일일이 토달았다. 이제 보니 이것도 서투네, 이제 보니 저것도 못했네, 그동안 너무 무심했어, 너무 자연스럽다고 넘어갔어 하며. 아이가 느리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선천적인 이유로, 제때 받아야 할 자극을 받지 못해서, 혹은 기질적으로 등등. 둘째 덕에 느린 아이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말이 트인다'는 것 만큼 자연적이지만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당장 다음날부터 나머지 가족들에게 알렸다. 그동안 부재했던 것. 마땅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그것. 검사를 하고 밤이면 인터넷을 뒤졌다. 더 늦지 않게 아이를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고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틈틈히 말이란 무얼까 생각했다. 아이들과 발표 놀이를 하던 어느 날. 차례가 끝나 내 옆에 자리 잡은 둘째가 처음으로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마 정말 행복해요. 정말 즐거워요.'


아직은 서툴고, 억양도 어색한 한마디. 그 짧은 말이 곧바로 심장에 와 박혔다. 아이들의 언어는 어쩌면 이렇게도 콕 콕 박히는걸까.


언어는, 한두 가지 자극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었다. 몸과 마음의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되기를 반복하면서 운동을 하며 터지는 게 언어였다. 숨을 참거나 사용하는 것, 코와 목, 입천장과 혀의 근육 그리고 그것들의 지속적인 움직임,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말을 돕고 있었다. 생각과 몸 그 사이를 매워주는 강 같은 존재였다. 말이 트인다는 것. 나 자신만 있던 세상에서 밖을 향해 보내는 사회적인 신호. 양육자들 사이에 쉽게 물어보고 물어오던 그 현상은 사실 너무 중요하고 보다 소중하게 대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 한마디가 더 값지고, 그러기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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