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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Dec 02. 2021

시간의 총량

여기저기에서 캐럴이 흐른다. 12월이 왔구나. 오고야 말았구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퍼뜩 정신이 든다. 막연하게만 여겼는데 어느새 바뀐 배경음악에 불안해진다. 그제야 실감하는 것이다. 연말이 찾아왔음을. 남은 1년이 요만큼 밖에 없다는 것을. 시간이 유한하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육아를 하며 나는 점점 동동거렸다. 버스를 반대로 타도 종점까지 느긋하게 라디오를 들으며 라이딩을 즐기던 사람이다. 이제 라이딩은 커녕 내 입에 밥숟가락도, 간식 부스러기도 들어갈 시간이 부족하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독촉하고 북돋아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볼일을 봐야 한다. 신이 내게 준 시간을 나 외의 존재들에게 할애해야 한다. 어쩐지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것만 같다. 아무리 흥청망청 써도 무한하던 시간이 갑자기 육아에 지분을 내주며 사라진 것 마냥 억울함마저 들었다. 너무도 금세 사라졌으니까. 하루는 너무 빨리 시작되고 한 것 없이 밤이 찾아오곤 했다.


아이들은 찰나에 다치고 순식간에 감정이 상한다. 어떤 순간은 초단위로 흐르고(역할놀이를 할 때) 어떤 순간은 야속하게 빨리 지나간다(십분 지났어 이제 일어나 엄마). 내일도 눈 뜨면 작업 책상에 이어갈 작업들이 펼쳐져 있겠지 안위하던 건 옛날 일이다. 집안은 아기의 등장과 함께 재빠르게 아기 위주로 바뀌었다. 육아 6년 차가 되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지나가던 움직임들이 제 속도를 내고 내 한 몸이 여러 곳에 있지 않아도 되었다. 왜 6년 차일까. 다른 사람의 그림에 함부로 덧입히면 안 되고 사인펜 뚜껑은 잘 닫아야 하며 벽에 낙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우기까지 걸린 시간. 엄마의 손이 덜 가기 시작한 시간이다.


조바심은, 시간이 유한하다고 느낄 때 불쑥 찾아온다. 마치 12월이 찾아왔을 때 모든 게 끝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2월과 1월이 이어지듯이, 1년이 그저 종이 달력 한 장의 종말인 것처럼, 끝은 끝이 아니다. 게다가 나의 시간이 다른 이의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는가. 한 시간의 인형놀이가 아이에겐 아쉽고 나에겐 영겁인 것처럼, 모든 시간의 질은 다르게 흐른다. 어쩌면 이제 내게 시간이란, 신용카드처럼 무의식 속에 무한정 긁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갑에서 꼬깃꼬깃 한 푼씩 꺼내봐야 하는 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 무심히 긁어버린 대금을 이제야 치르는 기분이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세울 수 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해내려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 내 몸을 망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한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의욕이 솟는다. 하고 싶은 일들이 새롭게 줄 서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1도씩 1도씩 방향을 틀어 본다.


올라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충만할수록 내 작업으로 돌아가는 순간 아쉽지 않다.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언젠가 공간의 분리도 할 수 있겠지. 더 놀아줄걸, 더 바라볼걸 후회하기 전에 지금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육아의 반짝이던 순간도 사진처럼 빛이 바랠 테니.


나를 좀먹는다고 여겼던 육아는 나를 작업하게 만들었다. 내 지갑 속 시간의 총량을 가늠케 해주었기 때문이리라. 사소한 순간에도 분명하게 살게 한다. 시간이 무한하던 때에는 종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로 인해 시간을 잃었지만 결국 아이로 인해 시간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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