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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Dec 04. 2021

놓을 수 있는 힘

'12시에 눕자'와 '가족 모두가 깨기 전에 먼저 눈뜨기'를 다짐한 이후로 밤 작업 시간이 촉박해졌다. 영 집중이 안된다. 천적의 동선을 살피기 위해 허리를 세운 프레이리독 마냥 시계를 흘끔거린다. 시간을 잊을 정도로 작업해야 하는데 시간을 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도 다짐은 지켜야 한다. 집안의 분위기가 나의 기상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첫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해가 뜨지 않은 뿌연 빛이 가득한 거실. 아이가 어릴 적이라 집안의 어두운 실루엣만 보이는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 음악을 틀면 조금 있다 아이가 까치머리를 하고 따라 나온다. 가느다란 빛도 눈부신지 눈도 못 뜬 모습이 그렇게 귀엽다. 굴에서 막 나온 새끼 토끼 같다. 아이가 다가오면, '잘 잤어?' 인사를 건네고 안기고 싶어하면 잠시 안고 있는다. 추운 날에는 창고에서 사과나 고구마, 귤을 꺼네 먹고 더운 날엔 포도를 따먹었다. 접시에 과일을 담아 거실 바닥에 앉으면 아이는 곁에 다가와 앉아 자기 몫을 쥐어주길 기다린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거실에 은은하게 흐르는 Ike Quebec의 ShuShu나 Wes Montgomery의 All the way를 들으며 마주 앉아 과일을 나눠 먹었다. 아주 오랜 시간인 줄 알았는데 헤아려보니 고작 1년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장 오래,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육아를 하기 전부터 일찍 일어나던 사람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전날의 후회와 애환이 잠으로 씻겨 나가고, 긴 밤은 마음속 혼란을 걷어간다. 뒤따르는 희뿌연 아침은 새로운 시작의 전조이자 과거를 흘려보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아침이 그렇게 소중했다. 그런 아침을 아이와 나누던 시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풍족함이 가득해 대화가 없어도 서로 연결된 것만 같았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어느 아침, 여느 때처럼 타박타박 걸어 나와 창가에 기대 놓은 악어 인형을 보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거'라고 발음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아이가 인생 처음 단어를 말하던 날, 아침이 주는 선물, 또렷하고 차분한 아침이 주는 선물임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둘이 되었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날엔 초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잠들곤 했는데 점점 감기는 눈을 버텼다. 작업 욕심이 생기면서 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졌던 것이다. 잠을 참는것도 훈련이 되었는지, 피곤하던 마음이 커피로 버텨지고, 한 시간 두 시간씩 밤이 연장되었다. 새벽 두시 세시에 자연히 배가 고파져 야식이나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침대위에 쓰러졌다. 다음날 컨디션이 안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보다도 늦게 일어났다. 처음엔 엄마를 찾다가 자연스레 깨우는 걸 포기한 아이들이 서로를 상대로 놀거나 책을 봤다. 아이가 둘이니 이건 편하네... 생각했던 것 같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등원이 힘들어졌다. 준비 시간을 알리면 바닥에 눌러붙었고 놀이방으로 도망갔다. 채 놀지 못한 장난감이나 읽지 못한 책 핑계를 대며 점점 칭얼거림이 늘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오전을 각각 홀로 보낸 아이들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차분한 아침, 대화가 없어도 연결된 것만 같은 시간이. 아침은, 잠자코 엄마를 참아주던 아이들의 욕구불만으로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기다려 줄 뿐, 괜찮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조금만 더 앉아 있으면 뭔가 좋은 작업이 나올 것만 같은 미련이 생긴다. 아이의 하원같이 떠나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이런 식의 비루한 앙탈은 소용없다. 하지만 밤은 다르다.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길게 느껴지고 그 까맣고 무한한 밤바다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자만하게 된다. 하지만 내 몸이 필요한 요구를 번번이 무시하면서 이어온 루틴은 나도 아이들에게도 불편했다. 살며시 밝아오는 아침이 필요했다. 천천히 시작하는 아침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곤 했으니까.


놓을  있는 것도 용기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놓을  있는  평화다. 놓을  있는   끝낸 작업과의 화해고 내일 다시 만나자는 다정한 기약이며 나를 향한 상냥함이다. 이제, 2 뒤면 내일이 된다. 잠자리에 들어야  시간이다. 오늘도 여기서 이만 마무리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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