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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Dec 09. 2021

글 쓰는 마음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상담소'를 듣다 보면 풍경이 바뀐다. 널브러진 살림살이도, 소란스러운 남매도 달리 보인다. 조곤 조곤 생각을 이어가는 목소리에 내면이 가라앉아 어느새, 개켜야 할 빨래 더미도 초원같이, 두 아이는 그 주변을 뛰노는 비글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한다. 평화는 따로 있지 않다고, 내 안에 있다고. 살림 사이사이를 누비며, 아이들과의 놀이 중간중간 귀를 기울인다. 육아 전선 어딘가에서 이탈해 홀린 듯 작가님의 수업을 들으러 외출한 그날이 떠오른다.


상상마당 6층에서 진행되는 2회차 수업이었다. 글쓰기 수업 치고 짧았지만 당시엔 오히려 안심했다. 상상마당이면 근처다. 아이들을 두고 긴 호흡으로 어딘가를 출석하기가 자신 없어 매번 기회를 넘기곤 하던 차였다. 그런 내게 강의가 찾아온 것이다. 기다려 온 만큼 결정도 빨랐다. 특별히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사명보다 그동안 글로만 접했던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는 팬심이 압도적이었다. 중년의 중후함을 예상했는데 작가님은 상큼하고 활기찬 아우라를 풍겼다. 상상했던 모습과 달라서였는지, 활자에서 느낀 거리보다 아담한 강의실에서 마주한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수업시간이 짧아 첫 시간부터 글감을 정하고 퇴고까지 마치는 과제가 주어졌다. 수강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결국 손을 든 두 명이 과제를 하기로 했다. 한 줄이나 두줄, 전화기 메모장에 다급하게 적는 게 다였던 시기다. 얼마 만에 숙제인가. 일감을 받은 일꾼처럼 의기양양하게 미션을 받아 들고 집에 왔다. 고통의 시작이었다.


두 살 터울이 제일 좋다는 루머는 누가 흘린 걸까. 속도가 다른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운다는 건 두더지 잡기 속 두더지를 양육하는 느낌이다. 그 혼란 속에서 충동적으로 받아온 과제는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무엇부터 생각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어딘가 먼 곳에 두고 온 나를 찾아오라는 지령 같았다. 기한은 일주일. 시간이 촉박해 나의 현재에 대해 쓰기로 했다. 낮에는 육아를, 밤에는 좋은 엄마라는 허울 속 나의 조금 더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적어 내려갔다. 현재 진행형이었기에 현장감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간의 밀린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글은 매번 하소연의 늪에 빠졌다 나오길 반복했다. A4 한장을 채운다는게 이다지도 어렵다니. 결국 글은 수업 당일 새벽에야 겨우 마무리됐다.


합평 시간. 과제를 해오기로 한 다른 사람이 오지 않아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프린트한 과제를 펼치는데 어쩐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글자가 눈앞에서 뿌옇게 흩어졌다. 정신을 다잡고 간신히 제목을 읽는데 혀가 목구멍으로 말려들어간 듯한 소리가 세어 나왔다. 결국 옆에 계신 분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낯선 이가 읽어주는 내 글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부끄러움도 슬픔도 아닌, 그것보다 꽉 차고 복잡한 뭔가였다. 합평 내내, 눈에 힘을 주고 바닥을 노려보며 눈물을 참았다.


이렇게 그날을 적기까지 3년이 걸렸다.


글이 발표되고 잠시 동안 말을 고르는 침묵. 어떻게 읽혔을지 이어지는 다른 수강생들의 평가. 내가 글에서 표현한 폭력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이는 어릴 적 자신을 떠올리며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어떤 이는 글의 의도에 대한 의문점을 드러냈다. 작가님은 잠시 말이 없다. 뭔가 글의 문장력이나 어휘에 대한 혹독한 평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날 작가님은 '아이를 키운 사람이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는 평을 남겼다. 글의 잘 씀이나 못씀을 떠나 육아 전선에 뛰어든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그날 쓴 글은 지금 봐도 너무 엉망이라 작가님의 평은 나의 힘듦을 관통한 배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배려로, 나는 이때껏 글을 놓지 않고 있다. 9회 브런치 공모전 마감 일주일 전, 11편의 글을 마무리한 게 계기가 되어 한편씩, 두 편씩,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들을 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작가님에게도 여운이 있었던 걸까. 그분의 저서 한 부분에 그날이 적혀있었다. 나는 합평이 시작되자 울음을 삼키느라 과제를 앞에 두고 침묵하던 사람으로 등장한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적을 당시는 담담하다가 마치면 조금 운다. 어떨 땐 뜨거운 게 올라와 잠시 몸의 떨림을 부둥켜안고 잠잠해지길 기다린다. 과제를 발표하고 나서 흐른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님의 담담한 이야기 속엔, 글을 적을 당시 내 상태를 읽어주는 마음, 그 순간을 적을 수밖에 없는 글쓴이의 마음을 알고자 다가오는 상냥함이 있었다. 팟캐스트 속 작가님의 목소리는 그때의 읽어주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 빨래더미를 오가는 아이들 틈에서 잠시 울컥한다.  


활자의 세계는 기역과 니은, 디귿을 넘어 글쓴이와 화자와 감정, 마음, 이상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그곳을 누군가 어루만져주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알게 된다- 생각보다 더 값지고 감격스럽다는 것을. 격려는 비판보다 먼 길을 간다는 것을 알려준 상상마당 작은 교실 속 경험은 오랜 시간 연료로 남았다. 나의 온전치 못한 하루하루 속에서 온전하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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