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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Jan 01. 2022

가족이라는 우주

등 뒤로 문이 닫힌다. 자가격리 열흘째. 바닥에 양말과 아이들 내복이 나뒹굴고 켜켜이 포개진 코트며 옷가지가 걸린 방에 홀로 남았다. 굴러다니는 옷가지를 한편으로 밀어 길을 만들고 구석 자리에 가 자리 잡는다. 이 방이 이렇게 넓었나. 이렇게 광활했나. 나도 모르게 긴 긴 한숨이 세어 나온다. 어째서 지난 며칠 동안 고성과 투닥거림으로 뒤섞인 문 너머 저 공간보다 이 비좁고 먼지 쌓인 곳이 더 숨통이 트이는 걸까.


코로나가 지속되자 우리 가족에게도 순서가 찾아왔다. 아이가 유치원 밀첩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나머지가 자동으로 자가격리 대상이 된 것이다. 올 것이 왔을 뿐이라고 여기며 우리는 일상을 준비했다. 남편은 분리된 공간에서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업무를 봤고 나는 아이들과 내 개인 시간 사이를 오가며 삼시 세 끼를 고민했다. 워낙에 집순이들인지라 큰 불편은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루는 친구가 보내준 보드게임으로 또 하루는 다른 이가 보내준 간식으로 달래며 이틀에 한번 장난감 배치를 바꾸거나 가구 위치를 옮겨 주변을 환기했다. 꽤 순조롭게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고 느낀 4일째 되던 날, 두피가 아파왔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불편하면 몸이 아팠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투로 열이 나거나 앓은 기억은 없지만 마음이 침범당해 곧잘 괴로워한 기억은 또렷하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이 건드려지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흔히들 삐졌다고 말하는 이 표현은 사실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어린아이가 가진 한계였지만 타인에게 호소력이 있는 방법은 아니었는지라 대게는 달램보다 비난이 날아왔다. 언제나 그럴 땐 몸이 마음에게 알리곤 했다. 지금처럼 피부가 아파온다거나 때아닌 몸살이 찾아오는 식으로 말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있는 거리에  식구가 복닥거렸다. 아이들에겐 이른 방학이었다. 아침 채비를  필요도, 서둘러 식사를  필요도, 오전에 떠오른 놀이를 오후로 미룰 필요도 없었다. 모든 계획이  있는 사람처럼 해뜨기 전부터   때까지 장르를 바꿔가며 놀고  놀았다. 그토록 놀았는데도 자는 순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지켜보자면 질리지 않는 놀이에 대한 논문을   있을 것만도 같다. 아이들은 식물처럼, 약간의 햇빛(적당한 티브이 시청), 적당한 (적당한 간식), 비옥하진 않지만 나름 영양 잡힌 (나의 요리) 도움으로 격리기간을 무난하게 지냈다. 어쩌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서로를 상대로 몸싸움을 하며 날려버렸다. 아이들이 현명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 대비 생명의 비율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일주일 넘게 빠직거리는 피부를 견디다 보니 25평 남짓 공간에 번번히 100 데시벨을 넘기는 180센티 미만 어른 둘과 아이 둘, 가구 몇 개와 먼지 몇 그램이 서로에게 마찰을 빚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에게 각각이 지닌 은하가 있고 그 속에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궤도에 따라 돌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각각의 속도에 맞춰 돌고 있는 행성들이 살아가며 다른 은하를 만난다. 그 은하 속 행성들은 또 그 나름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겠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은하의 만남은 둘 사이에 공전하는 행성들의 충돌이기도 하다. 어떤 충돌은 작은 파편들이 부딪히는 정도일 수도 있겠다. 누구에게나 우주 쓰레기는 존재할 테니까. 대게는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지켜 충돌을 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정적인 공간에서 만난 타인의 우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물리적인 거리가 줄어든 만큼 마음의 거리도 좁혀온다. 어쩌면 나의 가족들과 나의 은하 속 행성들이 각자의 순환을 순조롭게 지속하려면 그 속성을 알아차려야 했던 것이 아닐까. 가족이란 그걸 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가 아닐까.


자가격리가 이어지자 어떤 날엔 작은 우주 쓰레기가 부딪혔고 시간이 지나며 작고 큰 행성이 충돌했다. 연이어 부서져나간 우주 파편들은 각자의 궤도를 돌다 상대방의 행성에 날카롭게 불시착하기도, 혹은 행성 대기권에 속도를 맞춰 안착하여 돌기도 했다. 그렇게 공존은 지속되었다.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른다. 우주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던 속이 어느새 평온하다. 으쌰으쌰 내 안에 행성들이 재정비를 시작한다. 띠로롱. 같이 격리중이던 지인의 문자다.


-언니 우리 전원 음성이래요!

-축하해. 우리도야.


세시간 뒤면 자가격리가 풀린다. 어딘가 미친 듯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거든 서로 이해해주자고 덧붙인다. 아울러 매섭게 속도를 올려가며 행성 주위를 돌던 각자의 우주 파편들을 내던져 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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