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재미양 Nov 29. 2021

먹구름이

카페 내부는 항상 햇살을 머금고 있다. 햇빛 들어오는 방향으로 난 큰 창문 덕분이다. 이 넓은 창문으로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걸 바라본다. 이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다. 날씨가 변하는 걸, 하루가 흐르는 걸 볼 수 있는 공간. 귓가에는 챗 베이커가, 어떤 날은 레이첼 야마가타가, 어떤 날은 키스 자렛이 잔잔하게 흐른다. 처음엔 커피가 맛있어서 왔다. 한가한 날엔 뭔가에 골몰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물을 떠다 놓고 마시기도 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원두라며 서비스 커피를 내오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카페는 열려있다. 가끔 대관 일정이 끼면 이용하지 못한다. 짐을 잔뜩 이고 지고 들렀는데 휴무에 걸려 닫힌 문을 마주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잠깐이지만, 가게가 사라진 기분이다. 이곳은 카페가 많은 동네다. 멀쩡하게 장사하는  보이다가도 어느새 사라진다. 곧이어 새로운 가게가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어떤 곳은 자리가 불편해서, 사람이 많아서, 노래가 시끄러워서(혹은 취향이 맞지 않아서) 아니면 아쉽게도 문을 닫아서 인연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오면 절로 빌게 된다. 부디 오래오래 장사해달라고.


한창 작업을 이어가다 옆을 보면 강아지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무채색 공간에 어울리는 짙은 회색털의 푸들. 손님이 오면 카운터의 사장님을 향해 왕! 왕! 짖는다. '조용-' 사장님이 낮게 주의를 준다. 이어지는 보상. 간식을 획득하면 볼일이 끝났다는 듯 돔 모양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름이 뭐예요?' 열에 아홉의 손님이 묻는다. '구름이요. 먹구름이.' 매번 담담하게 대답하는 주인. '어머, 먹구름이래.' 손님들이 까르르 웃는다.


잠시 그 사랑스러운 뒷모습을 바라본다. 저런 뒷모습을 가진 또 다른 동물을 알고 있다. 2012년 여름, 임시보호를 맡은 적이 있다. 삼색이에 새침한 얼굴의 암컷 고양이었다. 작은 얼굴에 비해 망고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몸매를 가져서 망고라 불렀다. 지금은 없는 망고. 작업이 풀리지 않는 새벽 망고의 털에 얼굴을 묻고 울곤 했다. 그러면 망고는 자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낮은 야옹 소리를 내며 나를 돌아본다. 불쾌하단 듯 눈물에 젖은 털을 햣햣 거리며 그루밍한다. 망고 덕분에 울음은 곧잘 웃음으로 변하곤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운 동지. 한참동안 앉아있는 인간이 걱정스러운 듯 무릎에 올라와 골골 거리기도 하고 '어서 자자'는 듯 한번씩 내 곁에 와 야옹거렸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처럼, 일상의 모든 것이 태풍과 같이 흘러서, 어떤 한결같은 존재에 기대야만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일과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만 하는 사람들. 게다가 작업 과정은 너무도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아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땐 작업이 풀리든 안 풀리든 일관된 하루를 지속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태풍은 더 거세진 것만 같았다. 도무지 내가 가진 것으로는 진정이 안 될 때, 나는 구름이를 보러, 창밖을 보러 카페에 온다.


'구름아-' 이름을 부르자 발딱 일어나 내민 손을 햝는다. 촉촉하고 까슬한 감촉. 내심 마음이 평온해진다. 작업으로 시선을 돌린다. 색연필을 들고 다시 색칠을 시작한다. 아무 말도, 아무 관계도 없는 공간이지만, 강렬한 힘이 흐를 때가 있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존재가 주는 힘, 이렇게 평화롭고 일관된 공간이 주는 힘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흰머리 산신령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