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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Nov 13. 2021

육아밭 과수원길

목적지와 시간이 정해진 외출 전날. 되도록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잠들려고 했지만 결국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쌌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짐은 금세 불어난다. 얇은 옷부터 일교차를 견딜 두꺼운 겉옷까지 모조리 가방에 욱여넣는다. 다음은 아이들. 순순히 옷을 입고 신을 신고, 현관에서 나를 재촉하는 광경을 꿈꾸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날은, 특히 아이들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사과를 따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수원은 두 시간 거리였다. 주말이라 차가 막히면 세 시간. 7시에 눈을 떴건만 먹이고 씻기고 까먹은 짐을 챙기자 벌써 9시를 넘기고 있었다. 한 녀석을 현관에 대기시키고 옷을 입히면 다른 녀석이 놀이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설상가상 남편까지 전날 밤새 일을 하는 바람에 준비를 혼자 해야 했다. 하필 둘째는 '안 입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의미 없는 실랑이지만 그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입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앞으로 평생 겉옷을 입기 싫어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었겠지. 걱정과 실랑이로 현관 초입부터 체력이 방전되었다.


차에 타자 머리 꼭대기부터 발가락까지 긴장이 풀리면서 몸 여기저기에서 찌뿌둥한 짜증이 솟구쳤다.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군가가 늦잠을 자버려 이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한 스스로가 너무 짠해 보였다. 언제나 시작은 '왜 나만'이다. 나의 육아는 왜이리 힘든걸까.


"다음부턴 가만히 서있지 말고 애들 옷이라도 입혔으면 좋겠어."


이어지는 변명, 거친 목소리. 재잘대던 뒷자리 애들이 잠잠해진다. 풀렸던 긴장이 다시 올라온다. “차 돌려. 나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못 가겠다.” 그런 순간이 있다. 이 기분이 몇 시간 만에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관계 도중 감정이 상하면 회복이 어렵다. 살필 시간이 부족하다. 그동안의 감정들도 한꺼번에 몰려온다.  시퍼런 그 지점을 눌러보면 올라오는 기분 나쁜 통증 같은 감정들. 마음의 멍을 내내 안고 사과를 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남편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가자. 내가 다음부터는 잘할게.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신경 못 썼어."


사과 농장은 세 시간 반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장시간 투정과 짜증으로 절여진 차 안으로 상큼한 향이 실려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과수원은 마법 같은 곳이다. 단어에도 새콤함이 묻어있다. 풋풋함이 깃들어있다. 이런 단어들이 좋다. 11월 초의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는 그곳에 사과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구불구불 자라고 있었다. 사과나무는 이렇게 생겼구나. 언제나 우뚝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서있는 도심 속 나무들만 보다가 자유롭게 허리를 구부리고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보니 괜히 올라가고 싶어졌다. 어떤 가지는 무겁고 옆으로 퍼져 장대로 받쳐주고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에 사과가 이렇게나 많이 자라는구나.


이 농장은 고기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단다. 과연, 도착하니, 사과향에 섞여 연기 냄새가 자욱하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광주리에 사과를 이고 지고, 한쪽에선 벽돌로 쌓은 화덕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아이들을 맡기고 재빨리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불이 세서 그런지 연기가 사방으로 피어올라 피할 곳이 없다. 냄새가 밸까 잠깐 걱정을 하다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쩐지 차분해져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 새로운 땔깜을 넣었다. 후욱하고 큰 불이 올라와 연기가 거세졌다. 눈을 찌른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구나. 순식간에 연기가 나를 덮치고 매운 기운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 차릴 세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당황스러웠다. 둘러보니 너도 나도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다. 덩치 큰 아저씨도, 다리를 떨며 고기를 뒤집는 아줌마도, 네댓 명이 고기와 불을 둘러싸고 울고 있다. 마침 잘됐다.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울어도 되는 순간. 여기저기 시끌시끌 사과를 따고, 돗자리 위에서 점심을 먹는 활기찬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그곳에서,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우리 몫의 고기를 굽고, 오전의 속썪임만큼 눈물을 쏟고, 사과를 따러 갔다. 가지에 오롯이 매달린 열매를 한개씩 마주하자 사 먹을 땐 몰랐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이들도 어느새 차분해져, 행여나 사과가 멍들까 조심조심 사과를 따 바구니에 담는다.


그날 새벽, 비바람이 몰아쳤다. 잠들기 전 아이가, 태풍인가봐 하는 말에, 설마, 날씨가 그리 좋았는데 싶었지만 과연, 세워놓은 자전거가 넘어지고 옆집 정수기 페트병이 뚱땅 뚱땅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순식간에 날씨는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농장에 함께 갔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딴 사과를 얼마나 맛있게 먹고 있는지, 아껴서 먹고 있다 하자 언니가 웃는다.  '사과는 서리가 내린 다음이 진짜 맛있어.' 언니가 말한다. '지금부터 진짜 맛있어지는 거야. 양껏 먹고 또 주문해 먹으면 되지.'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 사과가 걱정되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과정 중 하나인가 보다. 서리 내린 사과가 보고싶어 검색해보니 씩씩하게 매달려 있는 사과 위에 반짝이는 얼음결정이 보인다. 사과나무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양분을 과일로 보내기 시작한다. 잎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시기에 따는 사과는 당도가 높단다. 급격한 일교차와 된서리는 농사를 망치게 하지만 그걸 견딘 사과는 그만큼 야무지게 익어가는 것이다. 문득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던, 양파가 떠오른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 정도 덮어두어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아주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의 서릿발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자식 키우기를 농사에 비유한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원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한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는 계절이 없는 농사처럼, 눈과 비를 다 맞아야 기어이 달고 단단해지는 사과나 양파처럼, 여러모로 닮아있다.


게다가 태풍이 몰아친 날에도 이어진다.


육아 서적이나 관련 방송을 보면 좌절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름 공부한다고 시청을 시작하지만, 이내 마음 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것. 완벽하고 싶다는 함정에 빠지는 것도 그것과 결이 같다. 현실 육아 한가운데 놓일 때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 모두를 재우고 홀로 거실에 앉아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알게 된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자꾸 잊어버리는 사실을.


아주심기를 끝낸 양파처럼, 서리를 맞고 당도가 올라간 사과처럼,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아에 뿌리내릴 때까지 돌보는 게 나의 몫이겠지. 한해 한해 배워가는 갓 귀농한 농부의 마음이 되어본다. 질풍같은 떼쓰기와 된서리같은 소리지름을 만나면 나의 육아도 지금부터 단단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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