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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Feb 04. 2022

벡터의 방향

'언니 글 보니 같은 상황이어도 아 언니랑 생각하는 벡터가 다르구나? 이런 느낌도 들고, 왜 그런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내 글을 읽어주는 H의 소중한 피드백이다. 벡터라니. 가만, 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그런 거 있지 않나. 잊고 지냈는데 알고 보면 상당 시간 그 단어를 공부하고 사용하던 시기가 있다는 걸. 벡터라는 단어가 그러했다. 중학교 물리 시간이었을 것이다.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양이라는 정의인데, 언제나 짐을 실은 기차가 출발해놓고 나보고 X의 값을 알아내라고 채근했다. 정말이지 물리가 싫었지만 (난 생물파였다.) 저 벡터라는 말은 멋있었다. '아, 왜 또 내가 이상한 단어 쓴 거임?' 내가 웃자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H가 덧붙인다. 이렇게 쓰기도 하는구나. H가 표현한 벡터는 말 그대로 방향이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자랐다. 자그마치 17년. 이 얘길 하면 제일 첫 질문이 '어떻게 거길 가게 되었냐'와 '거긴 정말 낙타를 타고 다니냐'다. 20년 전 사람들의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보다 세계는 훨씬 가까워져 요즘엔 이런 고백에 미지한 반응은 없다. 20대의 풋풋함보다 연륜 있는 중년의 공감이 대신 담긴다. '힘들지 않았어요?'


그곳에서 간접적으로 걸프전쟁도 겪고 이슬람 문화도 경험했다. 힘들었다면 연고 없는 땅에 자식 농사를 지어야 했던 부모님이 아니었을까. 철없는 어린아이에게는 그저 신비로웠다. 거기다 일부러 2층 대저택에 마당 가득 갖가지 동물들을 키워 (지금 생각하면 아빠의 무리수였던 것 같다) 자유롭게 크라는 육아관에 맞게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자랐다.


그럼에도 힘들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언어'적 차이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한국 학교를 다니고 현지 학교로 전학 갔다. 영어로 수업했는데 아랍어는 의무교육인지라 저학년 반에서 어린 친구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배웠다. 지속했다면 요긴하게 썼을 아랍어는 안타깝게도 아주 소수의 표현만 기억난다. 달달 외워 시험을 봐야 했던 '코란'은 지금도 술술 나온다. 이래서 '한국' 부모들은 조기 교육에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인가, 부모가 되어 요즘 드는 생각이다. 영어는 금방 늘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통이 원활해졌어도 문화가 다르니 항상 벽이 있었다. 절친과도 어느 선 이상 가까워질 수 없었다.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고립감은 생각보다 깊었나보다.


사우디 출신을 밝힐  마지막 단골 반응은 '어떻게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냐' 감탄이다.  말에는 잠시 당황한다. 17년이라는 기간이 타고난 언어를 잊을만한 시간인가. 처음으로 내가 쓰는 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는 대학을  뒤늦게 만난 관계들을 통해 깨달았다. 언어라는 , 무수히 많은 경험의 산물이다. 달달 외워서도 아니고, 매일같이 들여다봐서도 아닌,  언어를 가진 문화에 흠뻑 빠져있을  진짜가 되거나 시간이 흘러도 남는다.  차이를 몰랐는데 누군가 귀띔해준다. '한자어' 많이 쓴다고. 가족 간의 대화를 제외하곤 모든 한국어는 책으로 습득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빠 덕에 지금도 출판하는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항상 책꽂이에 있었다. 나는  앞에 서서 ‘토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백치 아다다 두고 무얼 읽을까 고민하는 10대였다. 나의 ‘한국어 유창하다고 느낀 지인들의 반응은 거기서 흡수한 표현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말을 ‘대화 아닌 '' 배운 이기에. 한자어가 섞였던 말은 육아를 거치며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H의 벡터는 Vector로, 그리고 물리가 아닌 Physics 시간으로 나에게 와닿았다. 그 언어를 공부하려고 애쓰던 시절이 떠오른다. 여러 언어와 문화가 섞인 내게 언어란 오감에 가깝다. 스스로 내뱉는 말들이 내 귀로 다시금 들리면서 했던 표현을 곱씹기도 한다. 가끔 세치 혀가 머리보다 빨라 어떤 말은 뱉는 동시에 '아차' 한다. 구사하는 말과 기록되는 글 역시 다르다. 일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 둘 사이의 간결한 차이를 느끼고 쓰고 알아가는 과정도 사랑스럽다. 항상 가까이 두고 조심스럽게 다듬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H의 벡터가 내겐 방향이듯이, 언어란 보편적이면서도 보편적이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 한정적인, 한 사람이 구현하는 대사 속 단어와 마침표 사이에서 그 사람이 드러난다고 생각해보면, 시간처럼, 이미지처럼, 담고 있는 언어도 상당히 제한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이해로 닿고자 노력한다.


주어진 지면처럼, 한가한 날의 대화처럼 언어에도 끝이 있겠지. 그러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편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무한하지 않은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지어진 것처럼, 무한하지 않은 언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가 아닐까.


머리에 맴돌던 묵혀둔 생각들을 꺼내면서 내 안에 언어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그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알게 되어 다행스럽고 항상 감사하다. 언어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 언어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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