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달력을 넘겼을까. 12였던 숫자가 2로 바뀌었다. 나의 한 달은 어딜 간 거지. 대체 뭘 한 거지. 시간은 가끔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 작은 사람들이랑 살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갑자기 작아진 신발, 어느새 커버린 키, 또박또박 발음하는 말대꾸에 감탄만 하다가 정작 나를 지나친다. 그러다 낯선 이가 거울 속에 비치면 그동안 엄마로서 쌓인 시간을 마주한다. 내가 '나'로 있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흐르는구나 깨달으면서.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나를 잊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비우면 비울 수록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겼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품에 품어줄 수 있었다. 가끔씩 날것의 욕망이 튀어나오면 나도 모르게 불친절해졌다. 나를 우선하고 싶어졌으니까. 그런 한 달이었던 것 같다. 엄마 외에 다른 자아를 아주, 아주 작게 줄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시간.
아픈 아이가 낫고, 두 아이가 등원을 가고, 그 자리에 작아진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이상한 일이다.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뭘 하려고 했는지 좋아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질 않는다. 바지런히 등원하는 작은 사람들과 마침 새롭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남편 틈에서 갑자기 실직 한 사람처럼 오토카니 앉아 있었다.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었다. 실직(?)기간엔 꿈을 많이 꿨다. 주로 동료와 맛집에 줄을 섰는데 마스크를 깜빡하거나 입고 있는 바지에 실수를 해 일행을 뒤로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내용이었다. 깨어나서도 너무 생생해 남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재미있어서 꺼낸 얘기였는데 나도 모르게 하소연이 줄줄 세어 나왔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대단한 것을 생각하느라 평범한 걸 기피하게 되네. 근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중간에 그만두게 되고.'
'내가 대학 때 한 고민을 지금 하고 있네.'
'음, 고민이라기보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 내 마음이 퍼즐인 거야. 한 가지 생각에 닿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이 피스, 저 피스를 궁리하고 끼워보다 마지막 한 피스를 맞추게 되면 그 생각이 완성되는 거야.'
'음, 나도 그런 식이긴 한데. 나는 너처럼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은 편인 듯.'
'오빤 나만큼 세분화되어있지 않으니까. 나는 피스로 치면 한 만 피스짜리 퍼즐?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려.'
'어, 나는 한 두 피스 정도? 대신 여러 퍼즐을 완성시킬 수 있지.'
'그렇네.'
만개라는 숫자는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몇 살인지 모르는 기억 속에 만 피스짜리 퍼즐을 온 가족과 모여 맞춘 적이 있다. 갓쓴 조명이 드리워진 기다란 책상을 다섯명이 둘러쌓다. 처음엔 5천 개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만개, 그리고 2만 피스까지 들여놓았다. 2만 피스쯤 되면 조각이 너무 작고 명암대비가 거의 없어 그게 그거같다. 모래처럼 보이는 자잘한 조각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앞면으로 뒤집는 것만 한참 걸렸다. 퍼즐이라는 게 '너드가 심심할 때 하는 놀이'라는 속설과는 달리 엄청난 협동 작업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처음엔 다섯 가족이 다 같이 허리를 구부려 각자의 몫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색깔별로 구석에 모으기 시작했다. 각자가 맞춘 조각들을 비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찾던 색을 건네주기도 한다. 침묵이 내려앉은 방에서 '함께' 퍼즐을 완성해 나갔다.
남편의 단순함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단순하니 뚝심있다. 아이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고집은 일상에 도드라져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을 통틀어 지나 온 행보를 추려보면 몇 가지 큰 줄기가 보인다. 성(공한)덕(후)으로 불리는 그는 평소 좋아하는 취미가 이젠 직업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붙잡고 있다는데 나와 큰 차이는 없지만 그는 세상 밖으로 나왔고 난 여전히 음지에 있다. 한때는 그가 육아를 전담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내가 복잡한 퍼즐을 붙잡고 명확하지 않은 생각을 고집할 때 남편은 이런저런 핑계 없이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뭘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유명 피겨선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일 뿐, 복잡하고 지난한 퍼즐을 고르는 당시 내 선택은 진심이었다.
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작업을 붙들고 있다. 한 달 전 힘듦을 고스란히 껴안고 예전 마음을 떠올려본다. 온전히 엄마로서 있어야 했던 한 달 동안 그간에 맞추던 퍼즐 조각은 산산이 흩어졌다. 만개의 퍼즐이 엎어진 것이다. '힘듦'이란 말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사정은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자잘한 감정과 본심이 파편처럼 흩어져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벗어난 미처 회수하지 못한 마음들은 서서히 불편함으로 바뀌어 되려 나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이만 피스나 되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다. 그때완 달리 지금은 나 혼자라는 것. 퍼즐 조각 맞추기란 혼자서는 더 긴 시간이, 더 지리한 끈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시작이 더디고 구별이 어려운 모호한 퍼즐 투성이 마음이라 남편같이 또렷한 두 피스짜리 마음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완성된다. 혼자임을 자처하지 않는다면. 이만 피스의 퍼즐을 맞출 때 바람 잘날 없던 그때의 다섯 명은 꽤 괜찮은 소통을 하고 있었다.
괜히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고 넌지시 옆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혹시, 거기 흩어진 내 조각이 주변에 떨어져 있냐고. 좀 주워줄 수 있냐고. 이리로 건너와 나와 함께 맞춰보지 않겠느냐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조각이 그의 눈에 띌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만 피스짜리 퍼즐을 도전해보려거든 지루함을 견딜 준비보다 함께 나눌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보는 게 좋겠다. 지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