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새로운 규칙
한인타운 중심쯤에 들어서자, 당혹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낯익은 글자들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골목을 돌다가 낡은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큰아빠가 그러는데, 여기 고기가 맛있데. 우리 식구들 오늘 고기 먹자."
간판엔 '서울 갈비'라는 네 글자가 오래된 붓글씨처럼 걸려 있었다.
문을 열자 후끈하고 끈적한 공기 속에서 달큼한 냄새가 확 들어왔다.
"아...갈비 냄새난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서진이는 이미 기대에 차 있었다.
"엄마, 여기 우리가 다니던 그 갈빗집 맛이랑 같을까?"
아마도 한국에서 자주 가던 단골 갈빗집을 말하나 보다.
가게 안에는 80년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나무 테이블들이 빼곡했고
손님들의 대부분은 이민 온 지 오래된 듯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꿈을 짊어지고 이곳까지 와서
이 작은 밥집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겠지.
우리는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 아주머니가 물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한국에서 막 오셨나 봐요?"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 바라봤다.
막, 이라는 단어가 예민하게 귀에 박혀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낯설게 행동하고 있었을까...?
"네.. 이제 한 달 좀 안 됐어요."
엄마가 조용히 답했다.
"아휴, 힘들죠? 금방 괜찮아져요."
엄마는 그 한마디에 위로라도 받은 듯 아주머니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불판에 익어가는 갈비,
그리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잠시 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빠는 크게 한술 떠서 맛을 보더니 얼굴에 금세 웃음이 번졌다.
낯선 길을 운전하고 오느라 아빠도 긴장 했으터.
그 뜨거운 한 숟가락 국물에 그 긴장감도 녹아내린 것처럼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걸어간 아빠는 영수증을 받아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한국에서는 결제만 하면 끝이었는데
여기서는 '팁'이라는 그 문화를 또 새로 배워야 했다.
아빠는 조용히 팁 금액을 적기 시작했다.
'적당히 성의 있는 숫자'를 적는 것 같았다.
아빠는 돈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고깃집 이모님들께 감사의 인사로 팁을 잘 건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머뭇거렸다.
아마도, 그렇다 할 사업을 아직 시작하지 못한 아빠의 불안감이 숫자 하나에도 스며들었겠지.
아빠가 계산서를 다시 건네는 순간,
서빙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봤다.
"이렇게 적게 내시면... 안 돼요. 여기 미국이잖아요."
차가운 말투는 아니었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계산이 처음이라 잘 몰랐네요. 미안합니다."
아빠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그분께 드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빠도 참... 그냥 처음부터 많이 드리지 그랬어."
혹시나 엄마가 볼멘소리를 할까 봐, 내가 먼저 툴툴거렸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의 새로운 규칙들 앞에 막막해서였다.
팁, 그게 뭐라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미국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일이며
씩씩한 우리 아빠도 기죽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