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Feb 16. 2017

아침부터 사고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 주고 오늘 길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시 멍했던 모양이다. 

횡단보도 앞에 다 와서야 빨간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자각... 


아, 저건 빨간불이네? 

그럼, 나는 서야 하는데?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멍한 거지? 

콩콩 정신을 차리려고 스스로에게 마음속으로 종주먹질을 해대는 중이었다. 


쿵! 


사고다. 

머리가 앞으로 10센티미터쯤 갔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내 인생의 파노라마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십 대, 아마추어 동굴 탐사 회원들 취재하느라 단양의 어느 동굴에 갔을 때 처음, 내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실감했고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발밑에는 깊이 모를 검은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틈 사이를 두 다리와 허리에 묶인 자일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었다. 

내 생명을 다른 이가 잡고 있는 줄 끝에 맡기고 걸어가는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과 형제들은 슬퍼하겠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은 나 하나로 끝나면 되는 것이었으니 죽음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두려워하지 못했던 나이였다. 건방지고 또 무모했지만, 삶에 가뿐한 나이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뒷 차가 내가 운전하는 차를 들이받는 짧은 순간, 

아, 자두가 이 차에 타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엄마가 된 나 스스로가 놀라운 순간들이 몇 있는데, 오늘의 그 순간이 그랬다. 

나의 안위에 자두의 내일을 겹쳐 생각하게 되는 자동반사적 생각. 

 

초보 딱지를 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몇 차례 사소한 사고들로 자꾸만 마음이 쪼그라든다. 

이십 대엔 비 오는 밤 차선이 지워진 고속도로를 쌩쌩 잘만 달리던 나였는데, 

아무리 해도 그 감각이, 그 산뜻한 용기가 돌아오질 않는다. 

자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그 차를 끌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걱정. 

휴~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