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제대하자마자 강변역 언저리에 있는 중국집에서 3개월 동안 배달 일을 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일하면 한 달에 30만 원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청소, 그 다음은 그날 주방에서 쓸 모자란 식재료 사러 시장, 그러고 나면 11시가 넘는데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배달 전쟁이 시작된다.
알바는 두 명인데 남편 말고 나머지 한 명은 이틀 나오다 그만 나오고, 일주일 나오다 치우기 일쑤였단다.
혼자서 수십 군데 배달을 다 하려니, 별 일이 다 생겼다.
배달이 너무 많이 철가방 두 개를 한꺼번에 배달하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그런 날 오토바이 앞을 막아서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오토바이째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는데, 사거리 한복판 빵빵대는 차들 사이에 짬뽕 국물 짜장면 국물 범벅을 손으로 쓸어담던 그 순간엔 한없이 슬프더란다.
아.. 이십대, 청춘인 내 남편의 등을 쓸어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배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어떤 사람은 돈을 눈앞에 던져 버리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욕설부터 뿜었으며, 또 어떤 이는 짜장면 배달부라고 대놓고 인간 취급 안 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수고한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고,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내놓아 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또 일할 힘을 얻기도 하고, 덜 슬프기도 했을 것 같다.
배달을 여러 건 가야 할 때, 남편은 자신을 인간답게 대해 주는 집에 먼저 들를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고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할 때 먹을 수 있으니까.
지나간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것은 태도의 문제, 라는 상식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우리 아파트 13층에 사는 두 형제를 보면서도 늘 했던 생각인데,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은 정말로 미묘한 태도, 그 한끗 차이다.
둘째는 이제 갓 스물이 되었고, 첫째는 대학생인데 이 청년들은 나랑 자두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1층에 내려 현관문을 나설 때 꼭 문을 잡아 주고 기다려 준다.
자두를 유모차에 태워 들어올 때 만나도 당연히 문을 열고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아 주고 기다린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시라. 그 당연한 걸 안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지.
배가 남산만 했을 때도 내 눈앞에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사람 때문에 배가 문에 부딪힐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마주 오는 사람들이 너무 공격적으로 걸어와서 배를 쓰다듬고 웅크린 자세가 된 건 또 얼마였는지.
인터넷에서 핑크 버튼을 갖고도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고 내내 눈치만 본다는 어느 임산부의 체험담을 읽으며 공분하는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지 돌아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필시, 우리 모두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이를 상처 주고, 바쁘다는 핑계로 배려를 미루고, 하지 않아도 좋은 친절에 마음 쓰는 것보다는 내 사소한 이익 하나를 더 챙기려 애써 왔을 것이다.
남편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아파트에 배달을 갈 때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아 봤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는데, 그 바람에는 우아하고 격조 있고 배려 넘치는 그 집 안주인의 상냥함까지가 들어 있었을 것 같다.
상냥함과 친절함.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화두다.
우리 자두가 그런 사람으로 자라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13층 아줌마는
"어쩜 그렇게 아이들이 바르게 잘 컸대요?"
진심으로 물어보면,
"아이고, 제 눈에는 아직 한참 모자라는데요?"
하신다.
늘 밝고 환한 그분의 따뜻함 아래 두 아이 또한 그렇게 자랄 수 있었겠지.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