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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23. 2017

어린이집 첫 '나들이'

영하의 칼바람도 무섭지 않다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이원수 시인의 동요 <겨울 물오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찬겨울 시린 얼음 위에서 맨발로 잘도 걷는 오리들을 보면서 대견해하는 이원수 선생의 마음을, 

오늘 나는 아이의 어린이집 첫 '나들이'에서 담뿍 실감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닌 지,  이틀. 

드디어 공동육아의 꽃 '나들이'를 체험했다.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했던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던 '나들이'는 공동육아 아이들이에겐 곧 밥과 같은 것이다.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상관없이, 아이들이 나가겠다고 하면 나가는 것이 공동육아 '나들이'의 대원칙이다.

날마다 어린이집에서 하게 되는 짧은 나들이, 때로는  1박 2일 먼 곳으로 다녀오는 긴 나들이까지,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그 시간에 맞춰 자라도록 돕는 교육 방식이 무엇보다 꼭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 역시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어떤 경로로 나들이를 할 건지, 가서 뭘 할 건지가 모두 아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등원 첫 날, 적응기인 4세를 뺀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눈비가 내리는 속을 뚫고 씩씩하게 나갔다 볼이 빨갛게 되어 콧물을 흩날리며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이지 대/단/했/다. 

아이들은 잔뜩 들떠서 1, 2층을 뛰어다니고(그것도 대부분 내복 바람이었다. 칼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 왔는데 덥다니, 이 아이들 어떻게 된 거지?) 그 많은 아이들이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였지만 나름 각자의 질서가 분명히 있는) 상태인데도 어른의 큰소리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는 놀라운 상황을 눈앞에 보았다. 눈으로 보면서도 쉽게 믿기질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도 아이의 첫 '나들이'에 함께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라 아침에 같이 등원해 오후 한 시까지 함께 지내고 있는데,

아이도 나도 낯선 환경이라 첫 날은 잔뜩 긴장만 했고, 

오늘에서야 겨우 맛뵈기 단계를 건너온 것 같다. 


오늘의 나들이는 어린이집 바로 앞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영하의 온도,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인지라, 등성이에서는 칼바람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장아장 잘도 걷는다. 

녹아서 질척거리는 진흙길을 미끄러지고, 낑낑대면서

"엄마, 바람이 정말 씩씩해!" 감탄도 하면서. 

바람이 아무리 차고 매워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밭둑엔 봄풀들이 제법 파랗게 돋아나는 중이었다. 

아직은 딱딱한 땅을 있는 힘껏 밀어올린 그 풀들만큼 씩씩하게,

바람과 함께 걸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은 참 즐거웠다. 



도토리를 줍고, 솔방울 달린 나뭇가지를 쥐고 흔들고, 바삭거리는 버들강아지를 꺾기도 했다. 

추우니까 이제 그만 가자, 소리는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먼저였다. 

잔뜩 떨어진 잎들 사이에 새초롬 숨어 있는 도토리를 줍느라 아이들은 코가 빨개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이었다. 

신고 간 신발은 진흙으로 엉망이 되고, 손은 빨갛게 곱아 가는데도 

"엄마, 우리 또 아가 도토리 있나 찾아보자."

아이는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30분쯤, 짧지만 인상적인 나들이를 마치고 어린이집 마당에 돌아와서는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모래판에 자리를 잡고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엄마, 떡이야. 시루떡. 먹어."

모래를 한 그릇 가득 떠다 주니, 먹지 않을 재간이 없다. 냠냠. 

옆에 있는 친구 엄마들에게도 골고루 다 한 입씩 나눠 주는 아이들. 

아, 이렇게 놀고 싶은 걸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겨울 내내 감기 걸릴까 전전긍긍 집안에서만 데리고 있었는데, 몹시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점심도 한 그릇 문제없이 뚝딱! 

되었다. 

최소한 남편과 나의 선택이 아이에게 독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많은 것을 겪게 되겠고, 시행착오에 갈등도 있겠지만 '나들이'를 통해 자연의 시간을 살아갈 기회를 얻은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자두야, 우리 같이 잘해 보자! ^^


이원수 선생의 <겨울 물오리> 마지막은 이렇다.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겨우, 한 시간 남짓 한 번의 나들이에 찬바람이 안 무서워질 리 없다.

그래도 시작이 나쁘지 않으니, 

얼음 어는 강에서 맨발로 노는 오리들과 같이 놀겠다는 작은 결기 한 자락은 생긴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집에 와서 목욕을 하는데, 대뜸

주워 온 도토리 오형제를 들고 같이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엄마, 아빠 도토리 엄마 도토리는 가라앉았어. 할머니 도토리도. 근데 아가 도토리는 동동 떠."

속이 실한 큰 도토리는 가라앉고 속이 채 영글지 못한 작은 도토리는 무게를 갖지 못해 뱅뱅 돈다.

아이가 이런 걸 책으로 배우지 않고 제 손으로 주워 온 도토리에서 진짜 지식을 배우는 거겠다 싶어 혼자 감격하는 엄마라니.

겨우 이틀에 이러고 있으니, 1년 지나면 얼마나 호들갑이 대단할까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엄마, 이거 껍질 까 줘. 뭐 들었나 보게."

뭔가 대단한 의미 부여를 자꾸 하려 드는 엄마에게 일침. 


피곤했는지 일찍 곯아떨어진 아이를 보며, 

추위를, 감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른들의 걱정과 기우 때문에 추위를 몸에 들이거나 맞서거나 때론 즐겁게 동행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신발 바닥에 엉겨붙은 진흙덩이를 떼어내고 바닥을 씻어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시작이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얼마 못 가 씻는 것은 곧 포기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농부가 깨끗한 신발 신고 일터에 나갈 수 없듯이, 노는 게 일인 아이들이 날마다 흙발로 돌아다닐 텐데, 그 신발을 날마다 깨끗하게 관리해 준다는 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아이가 날마다 신나게, 오늘처럼만 '살아' 뛰어 준다면 그걸로 공동육아를 선택한 목적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두의공동육아어린이집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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