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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6. 2017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니야


우리 아파트 8층에는 행복한 이모가 살고 있다.

우리 자두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어 주고, "안녕?" "어디 갔다 와?" 반갑게 인사해 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는 "귀여워!" "예뻐!" 한마디를 잊지 않는 분이다. 

이사 온 첫 날부터 스스럼없이 그러했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그 행복한 이모는 다운증후군이다. 

혼자 다니는 것은 본 적이 없고 할머니 혹은 엄마와 늘 함께 다닌다. 

우리 어머니는 한 번씩 혀를 끌끌 안쓰럽다 이야기도 하시지만, 자두의 반응은 다르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집 사람들이 타고 있을 때는 쑥스러워하고 내 등 뒤에 숨기도 하는데, 이 행복한 이모한테는 그런 적이 없다. 

자두가 이런 이웃을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참 다행스럽다. 

일상생활을 씩씩하게 이어 나가는 행복한 이모 덕분에, 적어도 다운증후군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분들이 이사 오면서, 자두를 낳기 전 기형아 검사를 하자고 하던 순간을 떠올렸더랬다. 

마흔 넘어 첫 아이를 낳는 일은 의학적으로 볼 때, 그야말로 곳곳에 지뢰가 존재하는 일이다.

엄마는 '노산'이라고 규정짓는 순간부터 뭔가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아기에게 해가 되는 엄마라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사는 보험회사에서는 그럴수록 태아 보험을 보장성 높은 것으로 들어야 한다고 꾄다. 

병원에서는 하지 않아도 좋을 갖가지 검사를 강권하기 일쑤다. 

다행히 나의 담당 의사는 "이 정도를 누가 노산이래? 걱정 마!" 기분 좋게 단언해 주셨던 덕분에 마음 편하게 열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만약에 기형아란 소리를 들으면 안 낳을 거야? 그럴 수 있어?' 하는 질문에 

너무도 쉽게, "아니! 그냥 낳을 거야!"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 아이의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친구에게도 너무도 쉽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기형아라고 하면 어쩔 건데?"

만약에 그렇다면, 부모가 가고 없는 세월 동안 첫째가 너무 고생스럽지 않겠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을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그랬으면서 막상 나에게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오자, 망설여졌다. 

'정말, 안 해도 될까?'

양수 검사를 할 때 의사가 찌른 침을 피해 도망다니는 태아의 동영상을 본 적이 없었다면, 어쩌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일상적인 초음파 검사를 마친 뒤, "목둘레는 정상이네요." 그 소리가 솔직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목둘레가 굵다고, 다운증후군 아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고민한 부부가 있었다. 

병원에서는 조심스레 중절을 권했다고 한다.

그만큼 확신했다는 거겠지. 

의사가 중절을 권하자 부부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병원에 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 

예정일이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다. 

의사의 말과 달리 아이는 다운증후군이 아니었다. 

부부는,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쩔 뻔했느냐며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다운증후군인 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많다면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만화가 장차현실이 자신의 다운증후군 딸 은혜  이야기를 가감없이 만화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 그래서 반갑다. 

한없이 밝아서 주변까지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 주던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고,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만화를 통해 보며 안도한다, 나는. 

그리고 이 책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를 통해 아빠의 솔직한 두려움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내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부터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아빠의 현실적인 모습을 용기있게 보여 줘서 고마웠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손으로 들어 올린 릴리아를 본 순간 나는 지진이라도 난 듯한 흔들림을 느꼈다."


아이를 안아 주지도 못한 비정한 아빠를 보면서, 독자들은 자신의 태도를 짐작해 보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심장이 약한 딸이 심장병을 이겨내지 못해 이 악몽이 멈추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솔직함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이를 안지도 못하던 아빠가 목욕을 시키고, 놀아 주게 되는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브라질에서는 부모를 선택하는 것은 아기라고 믿는다고 한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들을 선택해 준 딸에게 고마워하면서, 자신들이 그런 특별한 딸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선언한다.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 하지만 네가 와 줘서 좋아."


이 문장에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다운증후군을 다룬 많은 책 중에, 준비되지 않은 부모의 현실을 가장 잘 담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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