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34개월, 성교육을 시작할 때
아이가 서서 오줌 싸는 연습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변기에 앉아서 싸도록 했는데,
새로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서 남자 친구들이 서서 싸는 걸 신기한 듯 쳐다보기에 물었다.
"우리도 이제 서서 쉬 하는 거 해 볼까?"
"응응!"
신나게 대답하는 걸 보니, 그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앙징맞은 개구리 모양 소변기를 주문해 욕실 벽에 걸었다.
아, 이제 또 한 단계를 넘어서는 중이구나.
언젠가 오빠랑 둘이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빠랑 살면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남자 소변기가 없는 화장실에서 변기 뚜껑을 올리고 볼일 본 뒤에 그 뚜껑을 내리는 걸 오빠가 자꾸 잊어버리는 게 가장 싫더라고 했다.
상상해 보시라.
자다 일어나 비몽사몽 간에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내렸는데, 아뿔싸!
오빠가 변기 뚜껑을 내리지 않고 그냥 둔 변기에 엉덩이를 내렸다가 그 척척한 물방울들과 조우해야 했던 그 친구의 기분이 어땠겠는가.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뒤로 우리 엄마도 아버지랑 오빠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는,
"조준 좀 잘할 수 없나!" 였다.
자꾸만 옆으로 오줌이 튀니, 화장실 청소하는 엄마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시골살이에 익숙한 아버지나 오빠들로선 낭패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앉아서 싸!" 소리까지는 하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온 세상에서 그런 요구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엄마가 요구했다 해도 "남자가 어디 부엌엘!" 하는 순도 100퍼센트 경상도 남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남자들 중에는 남성 소변기가 없을 때 앉아서 볼일 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가끔 있었다. 대개는 그런 남자들을 남자'답지' 못하다며 비웃는 분위기였지만.
자두가 태어나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남자의 삶을 아이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결심한 대원칙은 이거 하나다.
우리 아이를 '괜찮은 남자'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으로 키우는 데 열과 성을 다하자!
그래서 여자인 내게, 엄마로서 아들을 키우는 모든 순간은 새로운 배움이었다.
지금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옮기기 전, 아이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나를 기다리다가 이런 말을 불쑥 내뱉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알겠지만, 절대로 욕실 문을 닫고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엄마, 문 열어!" 두들겨대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열고 볼일을 보아야 한다. ㅠㅠ)
"엄마! 남자는 키가 크고, 여자는 키가 작아."
빠직! 어디서 이런 얘길 들은 거지?
그렇게 일반화시키는 건 곤란해.
속으로는 비명을 질렀지만, 되도록 태연하게 다시 물었다.
"누가 말해 준 거야?"
"선생님이 가르쳐 줬어."
그렇군. 키 큰 여자, 키 작은 남자들은 어쩔 셈인가요, 선생님!
"또 남자 여자 뭐가 다르다고 하셨어?"
아이가 말했다.
"여자는 고추가 없어."
뭐라고? 그게 그렇게 단정지어서는 안 되는 문제란 걸 모르시나요, 선생님!
남자 아이에게는 성기를 가리키는 말 '고추'가 있어서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나, 여자 아이에게는 성기를 가리키는 말 자체가 음지화되어 있어서 거기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명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남자 아이의 성기를 '음경'이라 한다면, 여자 아이의 성기는 '음순'이라고 정확하게 호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감추려 들고 숨기려 드는 데서 오는 무의식적 죄의식이 여자 아이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동의되는 바 있었다.
엄마들 모임에 가서 여자 아이 성기를 뭐라 부르는지 물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성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조개'라고 하라고 했단다. 남자들이 여성 성기를 비하하며 지들끼리 낄낄대는 못된 비유를 딸에게 먼저 알려 준 엄마를 어찌하면 좋을꼬.
젖가슴이랑 하나로 묶어 '쭈쭈'라고 부른다는 엄마도 있었다.
엄연히 역할과 기능이 다른 신체 기관을 하나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가 헷갈리지 않겠는가.
문제는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아이가 이미 '고추'라는 말을 성기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여자는 고추가 없어."라는 문장 하나에 얼마나 심각한 성적 오해가 들어 있는 것인가.
아이에게 정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여자는 고추가 없는 게 아니고, 남자랑 다르게 생긴 거야.
겉으로 나와 있어서 잘 보이는 자두 고추랑은 다른 거지.
너무 소중해서 꼭꼭 숨어 있을 뿐이야."
그랬더니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 건 어디 있어?"
"엄마 다리 사이에 있지. 자두도 그렇지? 엄마 건 안 보일 뿐이야."
"또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다시 물었더니, 아이도 뭔가 느꼈는지,
엄마가 선생님한테 화를 내는 줄 알고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라고.
이런 게 일반적인 어린이집의 성교육 현실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해 준다는 명목하에 오해와 편견을 심어 주는 줄도 모르고 단정짓고 쉽게 일반화해 버리는 패착.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예전 아이들과 또 다르니 어린이 성교육 연령 또한 현저하게 낮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 어린이집 교육 과정에도 성교육 항목이 들어 있기도 하다.
나와 다른 성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배려해 줄까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우는 게 나쁠 리 없다.
그런데 자칫, 잘못된 어른의 잘못된 교육이 아이의 긴 생애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일이 될까 봐 무섭다.
어쨌는 우리 아이는 오늘도 남자 어린이용 소변기와 일반 변기를 내키는 대로 쓰면서 '차이'를 익히는 중이다.
나와 다른 성을 향한 배려를 습관처럼 배게 하는 것,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씩 둘씩 건너가다 보면 마음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서로 다른 것을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차이'로 인정하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돕고 싶다.
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