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Nov 03. 2019

나들이와 함께 크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

  

부모와 교사가 함께 꾸려 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가을은 1박 2일 ‘들살이’와 함께 무르익는다. 평소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은 날마다 ‘나들이’를 통해 자연을 체험하고 놀고, 성장한다. 가까운 자연으로 한두 시간 꼬박꼬박, 계절의 흐름 따라 나가는 일상 ‘나들이’를 공동육아에서는 “밥”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침 간식을 먹으면서 “오늘은 어디로 갈까?” 의논하는 일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는 훈련을 하는 자리가 된다. 아침에 나가서 점심 먹기 전에 돌아오는 나들이도 좋지만, 도시락을 싸서 짊어지고 다녀오는 ‘긴 나들이’도 좋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교사도 아이들도 여유가 있다. 길 가다 만난 새로운 것들에 마음껏 한눈을 팔아도 되고, 돌아올 걱정에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걸어서 가는 나들이 말고, 박물관이나 수목원 같은 곳으로 차를 타고 떠나는 ‘먼 나들이’도 있다. 


그리고 하룻밤 자고 오는 ‘들살이’가 있다. 나들이의 확장 버전이랄 수 있겠다. 집을 떠나 선생님,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하는 하룻밤은 그 자체로 신나는 모험이다. 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이들도 일단 다녀오면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껏 높아진다. 초창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2박 3일 들살이도 흔했고, 여섯 살이 넘으면 1년에 서너 번까지 방 별로 들살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의 사정이 달라져 그 정도로 자주 가진 못한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함께 떠나는 ‘가을 들살이’는 어린이집 1년 행사 중에서도 특히 즐거운 자리다.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이렇게 했어. 마음으로 꾸몄어.”

<나무를키우는햇살>의 2019년 가을 들살이는 강화도에 있는 성산청소년수련원으로 다녀왔다. 아이들은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액자를 꾸미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작품을 야무지게 설명한다. 수십 명 어른을 앞에 두고도 주눅 들지 않고, 친구에게 하듯이 편안하게 발표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고, 높임말 쓰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른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해 온 덕이다. 



숲에 가만히 깃들었던 시간 다음에는 몸으로 노는 시간이다. 아빠들의 닭싸움은 언제 해도 흥미진진하고, 별것도 아닌 엄마들의 팔씨름은 이유도 없이 박진감 넘친다. 자기 아빠가 쓰러지면 울어 버리는 아이도 있지만,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하며 엄마를 타박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 입에 과자를 넣어 주기 위해 하는 과자 따먹기 경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아이 발과 어른 발을 하나씩 묶고 달리는 릴레이 2인 3각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승자다. 


밤이 내리고 불빛 없는 섬 하늘에서 별과 달이 점점 또렷해질 때쯤, 손전등 하나씩 챙겨 들고 밤 산책에 나섰다. 비탈진 잔디밭을 뒹굴어도 좋고, 발에 채는 가시 밤송이 열어 아기 밤톨 몇 개 챙기는 것도 기분 좋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 손에 잡힌 운 나쁜 청개구리는 울지도 못하고 바짝 얼었다. 


“지금 걔는 사람 손이 너무 뜨거워서 앗, 뜨거! 앗, 뜨거! 하고 있다고!”

말리는 아이도 예쁘고, 얼른 땅에 내려놓는 아이도 어여쁘다. 늘 소란하고 시끄러운 상태에서 지내곤 하는 우리들 모두, 밤 산책에서만큼은 정적이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은 주지 못하는, 자연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아이가 또 한 뼘 훌쩍 자란 것이 느껴진다. 



“우리, 들살이 또 언제 가?”

아이가 묻는다.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생명력이 한껏 펼쳐진 들살이는 어른들에게도 참으로 달고 시원한 시간이었다.         


* <나무를키우는햇살 어린이집>은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4세부터 7세까지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영주산과 대장천이 가까이 있어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고, 너른 텃밭에서 거둔 깨끗한 먹을거리와 친환경 식재료로 밥상을 차립니다. 전화 : 031-957-5995                

작가의 이전글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