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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01. 2020

겁이 많은 건 전혀 괜찮아요

- "태워 줘서 고마워!"


말 타고 왔어.

이름은 ‘다그닥’이야.

일곱 살이래.     

처음엔 무서워서 타기 싫었는데,

타 보니까 재미있었어.     

빨리 달리는 건 싫고,

천천히 걷는 건 좋아.     

말이 좋아했어, 내가 일곱 살이라서.     

당근 주면서, “나 태워 줘서 고마워” 했어.

  

- 2020년 1월 15일, 이후국제승마클럽에 다녀온 날      

  


자두는 겁이 많은 편이다.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많은 아이다.

해 보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순간, “이야!” 하는 감탄사보다는 “어, 어” 하는 주저함이 더 크다.


제주도에서 처음 말을 타던 다섯 살 때도 그랬다. 엄마랑 아빠가 옆에 함께 있을 거고, 자두는 작은 말을 탈 거고, 절대로 빠르게 달리지 않을 거고, 무서우면 바로 내려도 된다고 열심히 설득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이미 돈은 다 지불한 터라, ‘끝까지 안 탄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 ‘이런 것까지 무서워하는 건 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문, ‘이렇게 겁이 많아서 나중에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엄마 마음속은 이미 난리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그래, 용기 내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뭐.” 했다. 그래도 아이는 다 알았겠지. 자기가 끝내 말을 타지 못하면 엄마랑 아빠가 실망할 거란 걸, 안 타고 싶지만 엄마랑 아빠가 좋아할 테니까 억지로 힘을 내야 더 좋을 거란 걸, 아빠한테 혼나거나 엄마의 실망한 눈빛을 보는 것보다는 잠깐 무서운 걸 참는 게 더 나을 거란 걸. 엄마의 말보다는 아닌 척하는 몸짓, 눈짓까지 다 보는 게 아이란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어린이라고 하지 않는가.

    

결국 자두는 오늘도 여섯 살 동생이 씩씩하게 올라타는 것을 본 뒤에야 “엄마, 나도 타 볼래!” 했다. 자두가 먼저 그러겠다 하기 전에 몰아붙이지 않은 스스로를 얼마나 대견해했는지 모른다. 말을 타고 모래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면서 말에 익숙해진 뒤에도 조금만 속도를 높이려 하면, “안 돼!” 소리를 질렀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하고 있다고 다그닥 엉덩이 좀 두드려 줄래?”

말 고삐를 잡아 주시던 선생님이 말했다. 몸을 살짝 돌려 한 손으로 말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 주라고 하자, 아이는 울상이 됐다.

"꼭 해야 돼?”

“똑같이 일곱 살 친구니까 그렇게 해 주면 좋지 않을까? 다그닥이도 용기내서 태워 주고 있는 거거든.”

한참을 가만히 고민하던 아이는 결국 한 손을 고삐에서 떼고 타고 있는 말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고민하고 힘들었던 모든 순간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그날 밤의 그림일기에는 자랑스럽게 말을 타고 있는 모습만 커다랗게 그려 놓았다. 하하.

과잉보호도 나쁘지만 과잉 반응도 좋지는 않다.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아이가 자신의 겁과 두려움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세요. (…) 아이가 두려움에 직면해서 겁을 낼  때에는 언제라도 부모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확신을 주세요. 이렇게 하면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두렵고 겁이 나는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오은영이 마음처방전 : 감정 中 59쪽     



정말로 어려운 것은,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그 어떤 도움의 말도, 책에서 읽었던 글귀들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저 아이와 나, 둘만 남는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에 정답은 못 되더라도 근사치에 가까운 말과 행동을 내놓고 싶어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기록한다.    

 

말 타고 온 날 밤, 자두와 함께 <수호의 하얀 말>을 다시 꺼내 읽었다.

늑대밥이 될 뻔한 망아지 한 마리를 주워 온 수호는 정성껏 망아지를 돌보았고, 성장한 하얀말은 늑대를 쫓아버릴 만큼 용감했다. 언제나 함께였던 둘은 원님이 여는 말타기 대회에 참가하게 됐고, 수호는 우승했음에도 원님의 사위는커녕 도리어 하얀말을 빼앗기고 말았다. 온힘을 다해 수호의 곁으로 돌아온 하얀말.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온 화살이 등에 잇달아 꽂히는데도 계속 달리는 하얀말. 결국 하얀말은 수호의 곁에서 죽고 말았지만 그 말의 뼈로 만든 악기 마두금은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몽골의 옛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끝내 수호의 곁으로 돌아와 잠든 하얀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다그닥이처럼 멋지지?”

“응! 얘도 일곱 살인가?”

한사코 일곱 살을 강조하는 아이가 웃기면서도 귀엽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예뻐서 머리를 꼭 껴안고 말았다.     

두려움을 아는 사람만이 끝내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고, 끝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아이가 섣부른 만용으로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마구 내달리는 아이인 것보다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아이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일곱살의그림일기 #말로쓰는일기 #엄마와함께쓰는그림일기 #일곱살의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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