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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02. 2021

시를 쓰게 만드는 책방

_ 책방 <생각을담는집>의 백 가지 매력



사진 한 장에 반해 북스테이 예약을 했다.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 아래 하얗게 쌓인 눈, 그 앞에 정갈하게 자리잡은 책방 건물이 있는 풍경이었다. 가고 싶은 계절은 겨울이었으나, 그건 또 맘대로 안 되는 것이어서 여름이 오기 시작하는 무렵에 용인으로 향했다. 


나무들이 길 양옆을 호위하는 멋진 길을 지나면 그야말로 난데없이 책방 <생각을품는집>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그래도 책방은 길가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던 까닭을 알겠다. 용인 버스터미널에서부터 물어물어 이 외진 책방을 찾아온 이십 대의 이야기도 실감이 된다. 자동차가 없다면 찾아오기 몹시 어려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책방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오고 나면 필시 이렇게 말하고 말 것이다. 

“아, 오길 참 잘했다.”     


때는 마침 푸른 보리의 시절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순하게 흔들리는 작은 보리밭이 있어 책방은 한결 풍요로웠다. 부부가 서울을 떠나 함께 살 곳을 찾아 엄청나게 많은 집들을 다녔다는데, 이곳이 선택받은 이유는 자명했다. 집 뒤 낮은 산이 집터를 안온하게 감싸 주고, 집과 산 사이 공터는 계절마다 먹을거리와 꽃들을 선사했다. 그 흔한 축사도 하나 없고, 오래된 집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조용한 마을 가장 안쪽에 고요하게 자리잡은 책방이었다. 


처음 이 집을 지은 이들은 막상 살아 보니 꿈꾸었던 시골살이와 거리가 멀었는지 재빨리 집을 내놓았고, 1층에는 책방을 열고 2층에는 살림집을 두어 ‘신간 읽는 할머니’로 늙어 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던 책방지기 임후남 선생은 이 집에 반해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시골에서 살아 본 적도 없고, 더욱이 농사라곤 지어 본 적도 없는 부부는 처음으로 자연에 완전히 안겨 사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름 큰비에 토사가 무너지고, 한겨울 폭설에 길이 끊겼다. 포크레인을 불러 공사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치우는 삶이어도 퍽 좋았다. 계절을 알게 되고, 자연의 흐름에 예민해졌다.      


“이곳의 나무 냄새는 참 좋다. 아침 냄새도 참 좋다. 오래된 나무들과 개울물이 만나는 냄새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살았을 나무들이 내뿜는 삶의 냄새들. 속으로 나이를 먹어 스스로 깊어지는 나무들. 그런 나무 앞에서 엄살을 부릴 수가 없다.”(시골 책방입니다, 36)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니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 우리가 간 날도 신문사에서 취재를 와 있었다. 책방을 두루두루, 책방 건물 뒤편 보리밭도 여기저기 사진 찍는 중이었다. 책방지기 임후남 선생은 그날도 앞치마를 정갈히 차려입고 사진을 ‘찍히는’ 중이었다. 앞치마 벗는 걸 자꾸 잊게 되어, 행사 때 누군가는 그런 차림은 예의에 맞지 않다고 지적까지 해 주더라 책에 써 두셨던데, 아니나 달라, 그날도 예의 그 앞치마 차림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취재를 한다고 하면 얼른 앞치마부터 벗어 던졌을 텐데. 사람들을 환대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적절한 차림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이는 책방지기 허락 아래 호스를 들고 보리밭에 신나게 물을 준다. 제주에서 전통 가옥 새로 고친 집에서 몇 주 보낼 때도 아침마다 마당에 물을 주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다. 물이 햇살을 만나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도 아름답고, 그 무지개를 잡겠다고 손을 뻗다가 팔을 다 적시고 마는 아이의 웃음소리도 듣기 좋다. 스스로 무언가 도움이 된다는 느낌도 좋고, 일 같지 않은 일을 하면서 칭찬도 듣고 재미까지 있으니 이건 일석이조다. 물 주는 일을 끝내고는 책방에서 산 책 몇 권을 가지고 나와 산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엄마, 놀아 줘.” “엄마, 나랑은 언제 놀아?”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을 흘러나오지 않으니, 나 역시 참 좋다. 산바람이 소슬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 알흠답구나.



책 읽는 아이의 배경음으로는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뻐꾸기가 낭랑하게 우는가 하면, 가끔 소쩍새 소리도 들린다. 물까치가 길고 우아한 꼬리를 뽐내며 푸드덕 날아가는가 하면 멧비둘기가 구구구구 목을 흔들며 먹이를 찾는다. 2층 베란다에는 곤줄박이 한 마리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마당에 앉은 우리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다들 제 할 일 알아서 하느라 바쁘다. 저 멀리 날아가는 물까치를 보고는, “엄마, 저 새 『새들의 밥상』 표지 새다!” 그런다. 새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서 본 새인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아이들의 놀라운 기억력에 깜짝깜짝 놀란다.      


저녁은 야외에서 먹기로 했다. 훈제바비큐를 부탁드려 놓았다. 와인에 하룻밤 재워 놓았다가 3시간 동안 훈제했다는 돼지고기에서는 좋은 나무 향이 났다. 할라페뇨, 두릅, 명이장아찌를 곁들인 식탁은 소담하면서도 한껏 화려하다. 긴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해 주신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뭇잎이 떨어져 이곳이 어디인지를 일깨우는 나무 아래 식탁, 그 맛과 멋이 일품이다. 


책방지기 가족 셋과 우리 셋,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이야기 나누며 먹는 저녁이라 더욱 그랬겠지. 마침 집에 와 있던 책방지기의 아들을 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엄마와 둘이 제주 올레 길을 걸은 이야기를 쓴 책 『아들과 길을 걷다』를 책방에서 사 보았는데, 읽다 보니 딱 내 고민과 닿아 있는 책이었다.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어떻게 키워야 할까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 구절마다 들어 있어 공감 백배였다. 엄마와 올레길을 걷던 초등학생이 성인이 되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신기했다. 참 잘 컸네, 수고했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누군가 나와 우리 아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주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밤이다. 북스테이로 내어주는 2층엔 우리뿐이다. 어두워지자 더욱 기세 좋게 우는 소쩍새 소리,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때는 마침 보름이라, 환한 보름달빛이 통창 가득 밀려든다. 건물에, 도시 불빛에 가려지지 않은 둥근 달 그대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소나무를 기본으로 하고, 흙으로 쌓은 벽에서는 좋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하룻밤 자고 나니 기운이 생동한다. 


아이도 깊게 잘 자는가 싶더니, 6시에 일어나 창 앞에 앉아 있다. 창으로 가득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아이를 깨운 모양이다. 혼자 일어나 엄마도 아빠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그득하다. 평소라면 일어나자마자 엄마 위로 뛰어들며, “엄마, 일어나!” “엄마, 배고파.” “엄마, 잠꾸러기!” 하면서 방방 뛸 텐데, 저렇게 고요하게 앉아 있다니. 어머머, 창 앞에 앉아 새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못 일어나는 아빠는 두고, 우리끼리 1층에 내려가니 책방지기 아저씨는 벌써 텃밭에 물 한 차례 주고 난 뒤다. 아이는 쇠스랑을 얻어서 아저씨가 일러 주는 대로 풀을 맨다. 5분도 못 가 팔 아프고, 다리 아프다며 던져 버렸지만 그래도 해 보겠다고 나서는 마음이 기특하다. 오늘 아침 먹을 자격, 충분하다. 이런 것이 시골살이의 일상이겠지. 일과 일 사이, 조금씩 주어지는 휴식. 

              


안녕 

개들아     

짖지 말고 

나랑 같이 놀자     

이제 조용해졌네 

놀자 하니까     

고민하나 봐 

나랑 놀까 말까.     


아침 산책 때 아이가 입으로 쓴 시다. 왕왕 짖어대는 개 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흥얼흥얼 중얼거리면서 가는데, 가만 들으니 이건 시다. 잊어버릴 새라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정신없이 따라 적었다. 아이를 시인으로 만드는 곳이라니,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북스테이를 하면서 하룻밤 묵은 사람들에게는 직접 만든 바질페스토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내놓는다. 그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할 때면 아침 햇살이 커다란 나무에 찬란하게 비춘다. 때때로 버터를 바르다 그 풍경에 넋을 놓는다. 

비 오는 날은 빗소리에, 눈이 오는 날에는 눈발에, 바람 부는 날에는 큰 숲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에 나는 넋을 놓는다. 이렇게 종종 넋 놓고 살아가다 문득 생각한다.

참 좋다.”(시골 책방입니다, 9)     


다음 날 아침으로 내주신 바질페스토 샌드위치는 잘 자란 바질 잎을 따서 잣과 올리브오일, 파마산치즈를 넣고 직접 만든 것이라 했다. 날마다 새롭게 자연을 만나고, 봄날 내내 마당을 어슬렁대며 새순 올라온 게 뭐 없나 찾는 삶은 하루도 지루할 새가 없게 했다. 이렇게 외진 책방까지 찾아와 책을 사 주는 이들에게 “이곳까지 오는 발길, 함께한 사람, 이곳의 나무와 숲과 흙냄새, 하늘, 바람, 커피, 웃음, 음악, 그 모든 것들”(시골 책방입니다, 46)을 함께 데려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각을담는집>의 진정한 매력이다. 

평생 노가다로 가정을 지켜 온 어느 아버지가 딸과 함께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딸에게 책을 선물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방지기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손님들의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책방 주인의 나직한 끄덕임이 느껴진다. 누가 찾아오든, 그 사람이 누구이든, 책을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서 빛나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 그것이 또한 이 책방을 멋지게 만든다. 책방지기는 손님에게 배우고, 손님은 손님대로 배움을 얻어 가는 곳, 시골 책방의 진짜 위치는 거기에 있다.      

“엄마, 우리 개구리 잡았던 그 책방 있지? 우리, 거기 또 언제 가?”

용인에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아이는 계속 이렇게 물었다. 

“개구리 잡으러 가자. 거기 아저씨가 또 오라 그랬단 말이야.” 

개구리는 정발산에도 있는데, 한사코 그 책방엘 또 가자 한다. 그래그래, 또 가자. 또 가야지. 그런데 또 언제 갈 수 있을까. 거기 가면 또 시 한 편 제대로 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생각을담는집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로 59-11

070-8274-8587      


#북스테이 #생각을담는집 #시골책방입니다 #용인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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