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와 40대 같은 20대

젊음은 가고 늙음은 온다.

by 스몰플레져

"영포티가 30대처럼 젊은 40대라는 뜻 아니었어?"

"너 요즘 숏폼 안 봤어? 10대들이 비꼬면서 따라 하잖아."

"아니 난 젊어 보이는 40대라고 칭찬하는 줄 알았지."


뜻을 알고 나니 SNS에서 비슷한 글과 숏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관리 잘한 얼굴과 몸매의 40대 혹은 50대들이 본인의 젊어 보임(혹은 어려 보임)을 과시하면, 진짜 젊은이들(혹은 어린애들)은 어려 보이려고 발악한다며 비난의 댓글을 달고 그 영상을 우스꽝스럽게 꼬아서 따라 하며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나이대인 40대들마저 조금 더 예의 바른 말투를 표방해 재밌어서 따라 했다는 말로 돌려서 공격하는 영상도 꽤 보였다. 40대는 미니스커트도 입으면 안 되고 긴 머리도 하면 안 된다는 글까지도 보고 말았다.

그리고 이젠 반대로 그런 글과 영상들에 40대들이 비난의 댓글을 달고, 일부러 미니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를 한 사진과 영상을 올려가며 젊은 층을 공격하고 있었다.


응? 나도 긴 머리인데.. 긁히면 지는 거라던데.


물론 양쪽이 열받아(?)하는 포인트가 각각 뭔지는 나도 너무 알 것 같지만, 어차피 1분이면 지나가는 화면에 불과한데 왜들 그렇게 화가 많고 부지런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일일이 반응하고 갈라 치기 하는 건지. 그냥 서로 조용히 인정해 주면 좋으련만.


나도 예전엔 나름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다. 플라워, 페이즐리, 레오파드(호피라고 부르던 시절부터) 등 뭐가 잔뜩 그려진 옷들만 사 모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점점 심플한 옷에 손이 간다. 애 데리고 놀이터 나갔는데 그런 옷 입고 나갔다가 동네 아줌마들이 이상한 부류로 취급할까 봐 용기가 안 나기도 하고, 그런 일 입고 갈 데가 없어서 안 사기도 하고, 때로는 내 나이가 자각되면서 이젠 안 될 것 같다고 포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한쪽만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숄더 스타일의 블라우스가 너무 야하지 않고, 우아하고 여성스러워 보여서 구매했다가 고민만 백 번하고 반품한 적이 있었다. 그 고민에 동참했던 스타일리스트인 내 친구가 이야기했다.

"별로 어깨 까부라지지도 않았더니만 그냥 입지 왜 반품을 했어. 패션은 기세야!"

그렇다. 아무리 패션은 기세라지만, 나이가 들면 어차피 기세는 줄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젊기 때문에 저절로 소유했던 예쁨이 줄어드는 만큼 내 안에 가득했던 기세도 함께 줄어들고 만다.

내 나이가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살아보니, 어차피 내가 살 날은 앞으로 점점 짧아진다. 오늘이 나의 제일 젊은 날이다. 환자이기 때문에 비슷한 나이대인 사람들에 비해 몇 번 더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본 경험으로 보면, 내일이라도 아니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게 인생이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입고 싶은 옷 입는 게 뭐 대수인가.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와서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왜 저러냐고 생각은 했었지만(소심해서 겉으로는 못하고), 나이가 들기도 하고 죽음을 대비해 보고 나니 이제는 오히려 제멋대로 사는 인생들이 본인들은 얼마나 편하고 자유로울지 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용기가 있다고도 생각이 된다.


여전히 나는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완전히 제멋대로 살지는 못하겠지만, 내 나름의 제멋대로를 시도해 본다. 나이 마흔에 뽀글뽀글 히피펌도 해보고 mz들이 입는 요즘 핏의 레오파드 바지도 구매한다. 예전부터 쭉 나의 추구미는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여자이고, 지금은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아줌마이다. 내 나이에 안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해도 내 꿈은 귀.여.운 할머니이다.

작년의 아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면 너무 어리고 예뻐서 아이들이 크는 게 아쉬운데, 그 옆에 서 있는 불과 1년 전의 나도 지금보다 어리고 예뻐서 씁쓸하다. 할머니가 되어도 여자는 나이 드는 게 슬프다고 했다. 딸들이 있으면 나중에 엄마 젊은 시절 사진을 꺼내어 '우리 엄마 참 어리고 예뻤다.'며 추억해 준다던데 나는 아들만 둘이다.

내가 늙었을 때 나의 젊음을 추억해 줄 사람이 나뿐이라는 뜻이다. 나는 당장 죽어도 세상에 아이들 말고는 아쉬울 게 없다는 마음으로 사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늙어 보이는 건 여전히 슬프다.

어쩌면, 10대 20대의 눈에는 그게 발악으로 보일지 몰라도 40대에게는 노화와 맞짱 뜨는 방법 일수도 있겠다. 내가 나의 젊음을 추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들도 마흔 살이 되면 이해하겠지. 이 정도면 핑계가 될까?


그러니 영포티와 20대 같은 40대들이여, 어려 보이는 내가 나 스스로 만든 착각이라 할지라도 나의 가장 젊고 멋진 오늘을 후회하지 말고 살자. 그 정도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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