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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은둔형 외톨이 입문조건

첫 번째 조건 - 살아갈 희망을 잃어야 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미안해’. 나는 고백을 하고 이런 대답을 들었다.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는 나도 바보였다. 30대였으니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비굴해도 그녀를 두 번 잡아보았다. 이미 그녀는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으로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눈앞에 놓여있는 컴퓨터가 유일한 위로였다.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분노의 총질로 그녀를 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게임이 끝나면 다시 그녀가 떠올라서 죽도록 게임만 했다. 생각나면 괴로우니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 다 빼앗아 버리고 싶었다.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두 번째 조건 - 돈을 벌지 않아야 한다.


30대 성인이 부모님 집에 얹어 살며 밥을 얻어먹었다. 설마 이런 생활이 1년 동안 이어지는 줄 부모님도 나도 상상도 못 했다. 어머니는 방구석에서 게임만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식을 넣어주셨다. 아마도 ‘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겠지’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티셨다. 가족관계는 좋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 가족들끼리 밥을 먹었다. 차츰 혼자 밥을 먹게 되고,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 가끔 TV에서 내 나이 또래 성공한 청년들의 인터뷰가 나오면,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다. ‘아들, 밥은 먹고 게임해라’. 화가 날 법도 한데 말이다. 결혼할 나이의 아들을 내쫓지는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 조건 - 고난에 대처하는 의지력이 약해야 한다.


의지박약, 이 단어는 내 성적표에 꼬리처럼 항상 따라다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담임선생이 쓴 평가란에 빠지지 않았다. 무엇을 배우다가 싫증이 나면 그만두었다. 그러니 어떤 분야든 실력이 늘리 없다. 머리가 좋아 빨리 습득하는 편도 아니었다. 의지력이 약한 데다가 습득력도 느리니 멍청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도 내가 머리가 나쁘다고 자학했었다. 어린 나이부터 습관화된 자기 비하는 성인이 되어서 어려움에 대처하는 의지력을 약하게 만든다. 은둔형 외톨이도 습관성이다. ‘두고 봐라! 나를 무시한 놈들에게 복수하리라’라고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네 번째 조건 - 생각이 없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이 생각이란 놈이 걱정의 탈을 쓰면 너무 괴롭다. 아무 생각을 안 할 때가 평화로울 때가 있다. 요 생각이란 놈만 잘 다스리면,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평화롭다. 그런데 이것만큼 힘든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외톨이의 필수 아이템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사회적 외톨이는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끝나면, 집에서 누워 유튜브로 시간을 때우면 스트레스를 푼다. 아마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의 청년 자살률은 몇 배는 늘지 않을까.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우울증 예방약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섯 번째 조건 - 인연을 끊어야 한다.


부재중 전화 20통. 동창이나 아는 지인의 전화가 오면 받지 않는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자신이 없다. 귀찮을 때도 있다. 두세 달 정도 전화를 안 받다 보면, 거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 완벽하게 나를 고립시키면 세상일에 무감각해진다. 옆 나라에 전쟁이 나도 큰 재난으로 사람들이 죽어도 남의 일이다. 도통 세상 밖 일에 관심이 없어지고, 중독자가 된다. 왜냐하면 자기 내면이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어쩌다 연락 온 친구를 만나면 신세한탄을 하거나 대화를 잘하지 못한다. 장기간 고립돼서 말을 안 하면 한국말도 까먹는다. 나는 5분 이상 대화를 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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