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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어둠의 기사

빛보다 어둠이 좋다.


100일이 지나고 완전한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이제 세상 밖의 일은 궁금하지도 않고 시간 개념은 사라졌다. 그래도 낮에 일어나고 생활했던 패턴들이 점점 밤이 좋아졌다. 활기찬 낮 생활이 싫어지고 조용한 밤이 좋아진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커튼으로 가렸다. 햇살이 싫어졌다. 밤새는 날이 많아지면서 어둠은 내 마음까지 어둡게 만들었다. 


밝고 경쾌한 음악보다 우울한 감성을 자극하는 슬픈 멜로디를 듣게 되었다. 이번 생은 망한 것처럼 지질한 감정에 푹 빠져 혼자 망상에 젖어갔다. 자연스럽게 인터넷 검색어는 어두운 단어로 변화했다. 미스터리, 내세론, 음모론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 인류를 조종하는 것은 그림자 정부이며 엄청난 부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 '인류의 조상은 외계인이다.' '지구 안에 또 다른 인류가 살고 있다.' '2012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한다.'




나를 충족시켜 것들은 상상력만을 자극하고,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비관론자가 되어갔다. 특히 2012년 12월에 고대 마야 달력이 끝이 나고 행성이 온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람들은 지하벙커를 만들고 종말에 대비한다는 다큐까지 봤다. 나는 여기에 빠져들어 갔다. 어쩌면 진짜 지구 종말이 올지 모른다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어차피 이번 생은 망한 거 같으니 그냥 편안히 하고 싶은 거 하다 죽자.


그렇다면 죽으면 어떻게 되지? 영혼이 된다면 사후세계는 어떤 식으로 존재할까? 내 머릿속은 이렇게 연결되었다. 다음 코스는 죽음에 대한 검색어로 발전했다. 딱히 믿는 종교는 없는 마당에 여러 가지 사후에 관한 정보들을 탐색했다. 영적 존재에 관한 지적 탐색보다 자극적인 귀신 동영상, 종말 예언론, 천국과 지옥, 퇴마, 폐가 탐험 등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영상으로 위로받기를 원했다.




어느덧 6개월이 흘러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낮에 잠으로 보내니 가족들과 대화할 일도 거의 없었다. 사람을 보면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어둠의 즐거움이 낮의 괴로움으로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낮에 자는 시간이 10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졸리지 않아도 자고 또 자려고 노력했다. 현실의 괴로운 상황을 눈을 감고 자는 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이틀, 삼일을 잠으로 보내기도 했다.


생활패턴은 게임, 인터넷 검색, 잠자기의 반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은둔생활이 할 만했다. 처량한 자신의 처지가 바닥을 치고, 옛날 쭈구리 시절로 돌아갈수록 내 머릿속은 나를 잘 나가는 남자로 상상했다. 금수저로 태어나 돈을 물쓰듯 써보고, 오픈카에 예쁜 여자와 드라이브하고, 세계여행을 하며 낭만을 즐긴다. 이제 눈빛은 초점을 잃고 상상 속의 어둠의 기사를 변신했다. 이때부터 서서히 정신적인 증세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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