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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내 안에 정신병들이 있었다니!

정신병적 증세들


1. 지속적인 짜증 상태


수압이 차면 압력이 터지듯이 억눌렸던 감정들이 다른 출구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처음은 잠자는 시간 빼고 깨어있을 때 항상 짜증 상태가 지속되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불만족이다. 조금만 누가 나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어느 날 편의점에 갔다. 길을 걷는데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싫었다.


그냥 피하지 않고 직진했다. 어깨가 살짝 부딪치면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허리가 구부정해서 어깨가 앞으로 쏠려있었다. 피칠갑만 안 했지 완전히 좀비처럼 보였다. 나는 타인과 감정을 나누지 않아서 부정적 에너지밖에 남지 않았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고립이다. 그들은 공감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2. 강박증세


각종 강박증이 발생했다. 보도블록을 걸으면 선을 밟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정한 패턴의 색깔을 밟고 선을 중심으로 걸었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의 걸음걸이가 아닐 듯싶다. 길을 걷다 보면 빠른 차들이 다가오면 나를 덮칠 것 같았다. 자꾸 차에 치이는 상상을 하고 겁을 먹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항상 가로수나 봉이 있는 곳에 파란불을 기다렸다. 혹시나 차가 나를 덮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은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고 걷는다. 유별난 강박증세로 사람들은 그를 꺼린다. 캐릭터를 밝게 그렸지만 현실은 이런 강박증세가 많은 사람은 어둡고 침울하다. 나는 낮은 공감능력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6개월간 대화를 하지 않으면 한국말도 잊어버렸다. 특히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5분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3. 불안증


각종 각박증과 트라우마가 하나로 모아졌다. 그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증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따위의 불안함이 아니었다. 깊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함은 느낌이 달랐다. 마치 온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


사회불안장애가 가장 크고, 공황장애와 광장 공포증이 더해졌다. 밖에 나오면 볼 일을 보고, 내 방에 들어가야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이불 밖은 위험해’ 은둔형 외톨이의 대표적인 슬로건이 잠재의식 속에 뿌리 박혀 버렸다. 이쯤 되면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며, 긴 치료기간이 필요하다.


사회불안장애: 특징적 증상은 면밀한 관찰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현저한 공포와 불안을 경험하며, 이는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회피로 이어진다.


은둔형 외톨이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까지 가기가 상당히 힘들다. 육체적 병은 아파서 병원을 바로 찾지만, 마음의 병은 서서히 곪아가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친다. 1년의 고립은 이미 병세가 완연했고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였다. 불안증은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죽고 싶은 생각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인터넷으로 죽음에 관련된 사이트만 찾아다닌 것 같다. 죽을 용기는 없지만, 겁이 나서 내세론에 매달렸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 한가닥 살아야 할 구멍을 찾아야 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손가락을 움직여 인터넷에서 길을 찾는 편이 낫다.



4. 우울증


‘기운이 없다.’ ‘기력이 딸린다.’ 말이 있다. 우울증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완전히 방전시켜 버린다. 일단 만사가 다 귀찮다. 무엇을 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게 된다. 마음의 상태는 전쟁 중이므로 모든 에너지를 내면 안에서 소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두커니 멍하게 앉아 있는 행동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내면에서 치열한 공방전 중이었다. 내 머릿속은 죽는 상상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우울증을 겪어보니 이것만큼 무서운 병은 없었다.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우울증은 죽고 싶어 한다.


TV에서 토크쇼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결혼해서 신혼부부가 나와서 밝게 웃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TV를 부셔버릴 뻔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나는 지금 죽을 만큼 괴로운데, 웃으며 노닥거려. 이제 웃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이미 심각한 대인기피증과 자기혐오는 자아분열 증세까지 오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고 대상을 혐오한다면,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내 안의 깊고 깊은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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