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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은둔형 외톨이의 세계여행 도전

초등학교 즈음에 인디아나 존스 황금사원이 개봉했다. 모자를 쓰고 수염 난 닥터 존스의 포스터는 강하게 끌렸다.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혼자 표를 끊고 10번을 극장에서 보았다. 처음 영웅의 모험담을 보고 뿅 가버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고난을 유머러스하게 극복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캐릭터. 이게 바로 남자가 가야 할 길!! 그래, 모험하는 고고학자가 되자. 꿈을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15년 후 진짜 세계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닥터 존스의 캐릭터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잔상에 남게 되었고, 첫 꿈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은 겁 많고 소심한 아이지만, 영웅적인 모험을 하는 강한 남자로 변화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쭈글이 생활이었다. 힘들 때면 방으로 처박혀 나오지 않고, 꾸준한 낮은 성적은 나의 소심함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모험의 여정은 점점 뒤로 미루어졌다.




조금씩 여행 계획을 실행할 때면, 은둔생활을 하곤 했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작은 힘겨움에도 큰 고통을 느끼고 두려워했다. 20살 때 친구가 아는 여자와 함께 걸었다. 나는 그 여자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 고등학교 3년을 남자들과 지내고, 공부로 찌들 대로 찌든 상태에서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 몰랐다. 심각하게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걷고 여자와 헤어졌다. 나는 친구에게 여자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봤다.


이 정도로 낯가림이 심하니 사회생활이 될 리가 없었다. 길을 걸으면 땅만 보고 다녔다. 세상을 무서워해서 고개를 숙이고 어깨는 움츠리고 다녔다. 쉽게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고, 매번 면접에서 탈락했다. 자신감 없고 흐리멍덩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쓸까! 계속되는 탈락과 콤플렉스로 열등감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힘들 때마다 방에 틀어 앉아서 주야장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중독이다. 잠자는 것 빼고 게임만 했다. 경제적 자립을 내팽개치고 부모님 우산 아래서 나가지 않는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지상 최대 과제는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은둔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낮에도 커튼을 치고, 방은 지저분해졌다. 밤 생활을 즐기고 가족들을 피했다. 1년간 은둔형 외톨이를 지내보니, 자신을 가장 망치는 길이었다. 미스터리, 음모론, 종말론, 사후세계, 귀신, 범죄물 등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에 끌렸다. 자살을 상상하고 공포에 매료되었다. 더 심해지면 환각을 본다고 한다. 여기까지 갔다면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 모를 일.


문득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무너지기에 너무 억울했다. 뭐라도 일단 해보자. 그때 생각나는 것은 어릴 적 꿈꾸던 배낭여행이었다. 세상 밖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나처럼 힘들게 살까? 어린 나이인지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내 성격을 처음 이겨본 첫 사례다.



힘겹게 사회에 나와 알바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2019년 오늘의 세상은 지식공유로 자유롭게 정보를 얻고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있다. 2000년대 전후는 정보화시대 초기단계여서, 여행정보는 여행책자에 많이 의존할 때였다. 세계지도를 펼치고 가슴 뛰는 모험을 하는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이 당시 몰랐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15년 후 방구석에서만 지내던 소심한 쭈글이가 장기 배낭 여행하게 되다니! 좀 놀랬다.


지난날을 회고해보면 여행은 가장 큰 나의 자산이 되었다. 파란만장한 모험이었고, 인종만 다를 뿐 사람의 삶은 똑같으면서 너무 달랐다.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상식이었고 여행은 그 상식을 장렬히 깨 주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숭고했다. 나는 그것을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외톨이였지만 옆에서 지켜봐 주던 사람의 소중함을 중년이 돼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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