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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Mar 04. 2019

등수놀이 잔혹사

꼴찌의 갈등극복 연대기


해방이다. 더 이상 등수놀이에 놀아나지 않는다. 매를 맞지 않아서 좋고, 지긋지긋한 야자도 할 필요 없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명대사 ‘대한민국 학교 0까라 그래’ 내 마음은 딱 이랬다. 쭈글이 학창 시절을 청산하고, 고등학교 졸업 다음날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떠났다. 12월 한겨울에 대구를 목표로 국도를 따라서 페달을 밟았다. 태어나서 첫 여행은 억눌렸던 것들을 폭발시켰다. 허벅지가 터질 정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적지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운동신경이라고는 1도 없던 내가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것은 분노의 페달질이었다. 6년간 억눌린 감정을 풀고 사회생활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사무직인 줄 알고 갔다. 그 회사의 교육방식으로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설득당했다. 순진한 사회초년생은 그런 줄 알았다. 영업을 알아야 사무직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제품 박스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난감했다. 대인공포증도 극복하지 못했는데, 방문판매를 하라니! 직장은 등수놀이를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웬걸! 더 심했다. 기본 급여에 플러스 능력제로 돈을 버는 시스템이었다. 역시나 나는 꼴찌였다. 첫 달은 부모님에게 용돈 받으며 다녀야 했다. 막대기 매를 맞는 대신 돈으로 매를 맞았다. 그래도 마음은 편할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첫 달 꼴찌에서 다음 달도 여전히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6개월 동안 만년 꼴찌로 낙인찍혔다. 팀장은 나를 측은히 여기며, 이직을 권유했다. 이제까지 신입사원이 꾸준히 꼴찌 한 전례가 없다고 했다. 또 한 번 꼴찌의 패배감을 맛보았다. 소수의 상위권 영업사원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다수의 중하위권 사람들은 항상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다수를 이루고 있는 회사 구성원의 희망을 잃게 만드는 시스템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위권 영업사원은 물갈이되고 다시 신입사원을 뽑아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강남 한복판 건물에 있는 최고의 환경을 갖춘 회사였다. 퇴직 후 알게 된 사실은 법을 교묘히 이용한 다단계였다.



첫 직장 시작이 이렇다 보니 자신감은 곤두박질쳤다. 이후 직장생활은 6개월 직장인이 되었다. 적응할 만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직장은 성실히 일을 했다. 시키는 것은 다 했다. 몇 년 동안 밤낮없이 일하고 쫓겨났다. 회사 내 다른 파트로 옮기고 멘붕에 빠졌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파트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왜 욕을 먹고 나가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야 직장동료들과 친해지고 일 능률이 좋아지고 있는데 말이다. 쫓겨난 직원 몇 명은 사장에게 전해 들은 즉슨은 이렇다.


당신들은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인정할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사회 부적응자인가? 회사 내에서도 다툼이 있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나를 시기 질투하고 내쫓아내려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복수하리라.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고 나를 자른 사람은 후회하리라.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적응 못하고 그만두었다. 나는 남 탓만 하고 다녔다. 이후 깨닫게 사실은 회사는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을 원하지 않는 회사였다. 뛰어나지도 않고 두리뭉실하게 일하는 직원은 회사 입장에서 애물단지였나 보다. 왜 짧은 회사생활 패턴이 반복되었을까?!



청소년기에 존재감 없는 열등 학생의 습관이 조직생활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주어진 일만 하는 직원, 수동적인 학습태도, 서툰 관계, 언어소통능력 부재,  만약 내가 회사 대표라면 이해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지막 회사는 성장할 기회를 많이 준 편이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지적해도 나아지지 않고 칭찬해도 시큰둥, 이러니 회사 입장에서 골칫거리 사원일 뿐이었다. 짜르기도 뭐하고 승진하기에도 부족한 직원.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해주고 나를 내쫓은 회사가 많이 봐준 거였다. 퇴사를 하고 반성할 생각을 안 하고 습관처럼 방 안에서 틀어 박혀 게임만 했다. 참 나도 갑갑한 청춘이었다.




타고난 성향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도 묵묵히 참고 버티며 다녔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한 인간도 아니었다. 청소년기 습관이 성인이 된 후 고착화되었다. 존재감 드러내지 않기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감정 표출하지 않기는 착하게 보이기로, 멍 때리기는 집중력 저하로 발전했다. 사회의 쓴 맛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습관은 운명이라는 것. 20대 바로잡기 위해 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봐도 소용없었다. 덕분에 고난의 청춘시절이 콘텐츠가 되었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웠다. 나는 등수놀이로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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