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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02. 2019

수치, 로보캅의 감정살해

파란만장 감정지도

아이들은 감정으로 세상을 배운다.


어머니는 가게 운영으로 바쁘셨다.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외할머니가 나를 도맡아서 키우셨다. 한 여름 오전에 할머니 집 마당에 김장을 담그는 아줌마 2명이 있었다. 그 사람 많은 마당에 빨간 큰 대야를 물을 받아놓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강제로 옷을 벗기셨다. 4살쯤이었다. 문제는 외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살던 신혼부부의 또래 여자아이가 있었다. 마침 그 여자아이는 발가 벗겨지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창피해서 옷을 벗지 않으려고 버텼다. 외할머니의 등짝 스매싱, 강제로 옷을 홀딱 벗기고 때를 밀었다. 처음 겪은 감정, 수치심.


유아기 때, 걱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날들이었을까. 골목을 누비며 그야말로 꿀 같은 날들을 보내며, 아이들과 땅따먹기, 술래잡기처럼 즐거운 기억보다, 외할머니가 강제로 내 옷을 벗기는 기억은 생생하다. 이때 무언가 폭발한 것처럼 감정을 일렁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느낀 수치심이란 감정. 어른 말 잘 듣는 아이였지만, 수치심은 4살 아이의 감정의 포문을 여는 계기이지 않았을까!


‘울지 마. 울지 않아야 착한 아이지’


참을성, 감정을 참아야 어른들이 좋아한다는 규칙을 이해했다. 아이의 창조주인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위는 당연하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견디기 위해서, 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눈은 단순하다. 감정을 숨기는 법부터 배운 아이는 얼굴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표현방식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 자신도 모르게 그림으로 그렸다. 역으로 이것이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나도 몰랐던 재능이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매질을 해도, 직장 상사가 갑질을 해도, 애인에게 차여도,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주위 사람들은 칭찬했다. 참을성이 있는 사람, 착한 사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이 나를 교살하는 위험한 습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야 할 에너지를 죽이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몰랐다. 감정의 첫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예상 못했다.


인간의 욕망을 가동하는 에너지.


로보캅 1의 주인공 머피는 살인범을 쫓다 무참히 살해된다. 방위산업체의 과학자들은 에디의 기억을 없애고 최첨단 사이보그로 재탄생한다.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괴로운 감정을 휘말리고 자신을 되찾는다. 이 스토리는, 인간의 심리 체계와 동일했다. 필자는 어른들의 강요로 감정을 살해하며 지냈다. 사회 시스템은 필자의 감정을 억압시키고, 괴로운 기억을 스스로 삭제하고, 최첨단 무표정 사이보그로 성장했다. 자기 성찰을 하면서, 과거가 재탄생되면서 괴로운 기억과 감정을 되찾게 되었다. 연민, 공포, 증오, 분노, 절망, 환희 등 필자가 겪었던 강렬한 체험을 바탕으로, 감정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 써보고 싶어 졌다.


위대한 영웅의 감정은 전 인류를 감동시키고, 포악한 독재자의 감정이 수많은 인류를 멸망케 한다. 감정은 공명정대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자율신경계 같은 감정이 어느덧 내 손발처럼 조절 가능해지는 때가 많아졌다. 내 감정의 메커니즘을 추적하며, 조절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로보캅처럼 살려고 노력했던 인간이 운명이 준 고통으로 감정의 기우제를 기원하는 제의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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