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만나 등산을 했다. 간만에 화창한데다 날씨도 선선해졌다. 여행에서 흥청망청 뒹굴기만 한지라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 침대에서 좀더 쉴까도 생각했지만, 무슨 일이든지 귀찮아도 일단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해지는 법이다.
거창하게 등산이라고 했지만,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이났다. 간만의 등산이라 심하게 헉헉대며 친구를 따라갔다. 둘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것인지 아니면 심심했던건지, 정치 이야기에서 부터 사회적인 현상이야기까지 할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어제 본 영화의 주인공 이야기라든가 요즘 내가 좋아하게된 배우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 등,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다. 나이차이는 좀 나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냥 친구같다. 가끔은 내가 맞네 말다툼도 하는 친구.
얼큰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사는데는 별로 쓸데는 없는 인간과 자본주의의 탐욕 같은것을 흥분해서 떠들어댄다. 사실은 이것이 바로 나와 친구가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우울하다는 말을 한다거나 힘내라는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힘겹지만 더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친구 역시 일부러 더 힘내어 보는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한동안 너무나 예민해진 내 감정에 갇혀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나와 상관있는 말을 하든 아니든, 위로의 말이든 아니든, 무슨 말을 들어도 모든 말들에 상처를 입었다. 그때 나의 감정은 아주 얇디 얇게 얼은 초겨울의 살얼음 같았다. 스치기만 해도 산산히 부서지는.
그러나 그런 때에도 혼자보다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가만히, 별일 없다는 듯, 오늘 날씨가 참 좋다는 이야기나 혹은 길가의 꽃이 예쁘게 피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있던가. 그런 친구지만 그도 요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폭풍같은 시간 속에 갇혀있다. 내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일도, 친구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일은 많지 않다. 다만 서로 꿋꿋이 버티는것을 보며 힘을 얻을 뿐이다. 너와의 시간에서 내가 힘을 얻고 이번주를 살아내듯 너 역시 나로인해 조금이나마 더 수월하게 이 시간을 버틸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