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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un 09. 2024

브루투스, 너마저?

매일 일기를 쓴다. 하지만 예전의 일기를 다시 읽는 것과 에세이를 다시 읽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이미 이혼이고 뭐고 다 전생의 일이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기억들을 기억나는 대로 하나씩 기록해 보려한다. 오랫동안 생각의 쳇바퀴 속에 빠져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토록 오랜 시간 방황했나 싶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유는 하나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배신이란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고도 하던데,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와의 시간을 통째로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사랑했던 것인지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무튼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그 당시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배신감은 상당했다. 그따위 인간을 좋아하느라, 그따위 인간과 그 많은 시간을 소비했단 말인가.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 혹은 가장 방황기(?)인, 어쩌면 가장 즐거울 수 있었던 2, 30대, 10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고, 그러면서 우리는 꽤나 마음이 잘 맞아서 오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여행사도 차리고 책도 쓰고, 격렬하게 마시고 싸우고 화해했다. 그 시간들을, 내 인생의 10년을 통째로 도둑맞은, 혹은 처참하게 더럽혀진 그런 기분이었으니 우울할 만도 했다.


그리고 그와의 문제에 더해 그 이후로도 몇몇 일련의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나를 완전히 인간불신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했다. 도무지, 도무지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의 나는 모든 사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자만했고,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으므로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평생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일들이 벌어졌고.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이해 가능한 범위 안의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이해하려고 발버둥쳤던 흔적들이 역력하다. 하지만 몇년동안이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혹은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물을 흘리고, 자다가 숨이 가빠진 채 눈을 뜨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다.


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오만한가. 나는 내가 꽤 착하고 똑똑하다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세상은 내가 대하는 대로 나에게 대해 줄 것이라고, 누군가가 당할 수 있는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나는 피해갈 수 있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나 자신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데, 도대체 내가 누구를 이해한단 말인가? 나는  내가 착하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건데, 나는 적당히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살면서 행운이 따랐던 적도 꽤 많았지만 절대로 내게는 닥치지 않을 사건들도 벌써 여러 번 겪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고, 대단하지 않고, 착하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천재지변이 잦은 지역의 사람들은 종교를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그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요즘 같이 종교와 윤리가 약해진 사회에서는 사이비 종교가 득세하고, 혹은 사주나 점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한다. 나도 방에 처박혀 내내 왜 사는지, 이대로 살아서 뭐 하는지에 대한 생각에 몰두 했을때, 살면서 사주를(인터넷 사주에 불과하지만) 가장 많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우주의 모든 사건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며 세상에는 아무 이유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오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랑하는 친구라 하더라도, 그 친구가 언젠가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두려워서 모든 사람의 행동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고, 작은 일까지 일일이 따진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주는게 좋은 사람이고, 줄 수 있는게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고, 서로의 세계를 밖에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렇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비로소 마음이 많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지난 시간이, 비록 마지막은 처참했다 할지라도 당시 그 순간만큼은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날 해꼬지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라고... 도 생각한다. 아주 처참한 복수를 해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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