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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Nov 06. 2019

네 옆에 있을게

친구와 싸웠다. 나는 가끔 아주 못된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 마음을 아주 순화해서 말해야 한다. 나중에는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그 과정이 힘들때가 있다. 특히 친구의 말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을때 더 그렇다.


" 네가 우울하니까 내 우울한 모습은 네게 보이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나도 힘든 걸 하소연도 하고 싶고 그렇단 말이야. "

' 나도 힘든데 너 힘든걸 받아줘야 할 의무가 있어? '


한동안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귀찮아 한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톡은 울리고,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예전에 올려놓은 SNS포스팅에 댓글을 달았다. 친구의 괴로움이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좋겠지만, 하소연 할 사람이 나 밖에 없는걸 뻔히 아는데도 방안에 처박혀 혼자만의 괴로움을 만끽(?)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힘들때는 혼자 방안에 처박혀야 하는 사람이고, 내 친구들은 대개 내게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을 해야 풀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왠지 모를 의무감과 한없이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갈등하다가 어쩔수 없이 톡을 살펴본다.


" 요즘 뭐하길래 연락이 안돼? 주말에 커피 마실래? "

" 어, 나 요즘 좀 힘들어서. 알잖아...나중에 연락할게 "


톡을 확인했는데 답장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이 다칠것 같아 걱정이 되어 억지로 메세지를 남겼더니 이런 대답이 온다.


" 야,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든데 나도 좀 챙겨"


절친이 잠적한 그녀도 힘들겠지 싶다가도, 나는 그녀가 내 사정따위 아량곳 하지 않는 것 같아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날 나는 '앞으로는 무조건 나부터 생각하고 살겠다.' 고 다짐했다. 어차피 다들 자신부터 걱정하니까, 아무도 날 먼저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나 부터 살고 보자.  나는 한동안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동안 의사의 잔소리를 들으며 약도 타 먹고, 헬스장에 가서 내 돈내고 기합도 받았다. 늘 바보같다고 생각했던 등산을 즐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화창한 날에 헉헉대며 높은 곳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행위는 의외로 정신건강에 아주 좋았다.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일기장에 '오늘은 정말 확실히 나아졌다' 라고 쓰고는 며칠내로 다시 '오늘도 울었다' 를 쓰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우울할때는 먹방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무려 2권짜리 고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도 읽는다. 정말 완전히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즈음 이 친구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친구도 나처럼 우울할때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가 이제서야 좀 나아졌는지 연락을 한 참이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돕기로 했지만 단서를 달았다. 내 앞에서 네 우울한 이야기를 하지 말것. 위로할 친구가 필요하면 다른 친구를 찾을것. 그러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상태였고 친구는 누군가가 매우 필요한 상태였다. 친구는 자꾸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나는 계속 거절하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해 아무리 좋게 마음먹으려 해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 나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내가 해 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어. "

" 네게 뭘 해달라고 하는게 아니잖아. 나때문에 누가 힘들어 하는걸 누가 좋아하겠어 "


그러게. 나는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누군가 내게 그렇게 공감하고 진지하게 이해해 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과 동감은 다른 문제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것이고, 동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공감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많은 것들을 스스로 치유한다고 한다. 동감하면서 함께 아파하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치 내가 모든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양 건방지게 굴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너무 걱정되다 못해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여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 보다는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게 나을텐데. 어차피 친구들의 일은 친구들이 해결할 수 밖에 없고, 그저 누군가 함께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랬을 뿐인데. 그러고보니 내가 우울해서 방안에 처박혀 있을때 그녀도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나와 함께 있어 주려고 그렇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우울에 동감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내게 공감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게 아닐까?


" 그래, 가끔 밥이나 먹자. 네 하소연 정도는 들어줄게. "


나도 내 우울감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 지고, 친구의 모든 하소연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건 네 일이니까 나는 최선을 다 해 이해하겠지만 약간 떨어져 있겠다고. 그래도 종종 너를 우울에서 꺼내어 주고, 함께 그곳에 있어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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