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별 Sep 25. 2021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 노아야

파친코 <이민진>, 문학동네

<자료 = 문학사상>


  독일에서 유학하는 친구의 플랫 하우스에서 최근 동거인들끼리 갈등이 생겼다. 사연은 이렇다. 친구를 포함해 동거인 3명이 있다. 그런데 그중 A가(유럽 백인, 여성, 난민단체에서 일함) 데이트하는 사람이 항상 특정 남성이었다. 여기서 특정이라는 것은, 이들 남성이 일정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A가 선호하던 남성은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랍인, 과거 난민 신분으로(부모라도) 유럽으로 들어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A의 '취향'을 함께 살던 B(유럽 백인)의 애인 C가 발견했다. 애인을 만나러 플랫을 드나들었던 탓에 A와 C도 자주 마주쳤기 때문이다. C의 부모는 동남아인이었지만 C는 유럽에서 나고 자랐다. 유럽인인이었지만 인종이라는 소수성을 지닌 셈이다. 동시에 그는 트랜스젠더였다. 그만큼 소수성으로 인한 차별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1년 넘게 A가 데이트하던 남성을 지켜보던 C는 어느 날 선언했다. 더 이상 A를 웃으면서 마주할 수 없다고 말이다. 


  C는 A가 특정 인종과 배경을 가진 남성을 골라 데이트하는 점을 지적했다. A가 '마이크로 레이시즘(미세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A가 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일상 속에서 이 같은 차별을 하는 걸 C는 문제 삼았다. 나치와 유대인 학살을 겪었던 독일이니만큼 인종차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A는 친구들의 지적에 수긍했다고 한다. 본인이 특정 인종과 배경을 가진 남성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A는 "그런 남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린다"고도했다. 어떤 사람은 눈이 큰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은 눈이 작은 사람을 좋아한다. 인종 역시 '취향'으로 존중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인종도 취향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엔 마음이 영 불편하다. 교환학생 시절 유럽에 가면 아시아 여성들만 골라 데이트하는 백인 남성들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항상 불쾌감을 느꼈던 이유가 그 역시 차별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서일 지도 모르겠다. 인종을 사회 속에서 떼어내 생각하기 어렵다. 예컨대 한국에서 태어난 흑인을 생각해보자. 같은 한국인이더라도 이 사람이 듣고 보고 자라는 삶과 평범한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의 경험과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 <파친코>는 '취향'과 '차별'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게 힌트를 줬다. 작가인 이민진 씨도 7살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았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하나인 노아의 부모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했다.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그의 일본인 애인에게 그는 말한다. 나를 조선인이 아닌 '사람'으로 봐달라고. 


<노아가 아키코를 노려보았다. 아키코는 항상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아 그 자체가 아니라 환상적인 외국인 모습을 노아한테서 찾는 것만 같았다. 아키코는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준다는 이유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자 교육받은 사람, 자유로운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그는 아키코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조선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그게 무슨 의미든 상관없었다. 


(중략)


아키코는 자신이 그녀의 부모님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테니까. 노아를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그냥 조선인으로 보는 것이 나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모를테니까. 아키코는 노아의 인간성을 볼 수 없었다. 노아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조선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고 싶었다. 117~118p>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 여자를 좇는 남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