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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Aug 01. 2021

어린 여자를 좇는 남자들

2021 제1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2021 제1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문학동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너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해야지. 서른 넘은 여자를 누가 만나겠냐." 

  아마도 21살, 22살 때였다. 친한 동아리 남자 친구가 지껄였던 말이 지금 생각난다. '결혼을 늦게 하고 싶다'는 내 말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는 안 늙냐. 같이 늙는 거지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대답했던 거로 기억한다. 


  10년 전 감수성은 이 정도였다. 적어도 지금은, 내 주변에선 저렇게 말을 꺼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날 보며 '적지 않는 나인데 결혼 빨리해야지.'라고 돌려 말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저렇게 대놓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주변에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곤이 몰려올 때가 있다. 남녀 소개팅을 해주려고 하면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찾는다. 30대 초반은 20대를, 30대 후반은 적어도 30대 초반을, 40대는 30대를 찾는다. 40대한테 같은 40대를 소개해주려고 하면 "너무 나이가 많지 않나?"라며 기분 나쁜 반응을 보인다. 마치 자기가 무시라도 당한 것처럼 말이다. 


  남자들은 왜 어린 여자를 좇는가. 남자들 몇 명한테 물어봤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자기도 왜 연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는 의미다. 추측건대 연상 남자와 연하인 여자 커플에 대한 고정관념이 깔려있는 것 같다. 성별과 나이 차이로 만들어진 위계로 여자의 '순종'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남자들이 아직도 '오빠'라는 호칭에 환장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애인을 '누나'라고 부르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자본화된 외모 평가도 담겨있다. 현시대에서 외모라는 자본은 젊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게 설계됐다. 애인이 될 여성에게 남자들이 기대하는 가장 큰 조건 중의 하나가 '외모'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자기의 객관화가 부족한 부분도 한몫한다.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은 '늙었다'라고 여기지만, 자신은 '매력적이다'라는 비뚤어진 객관화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 나오는 장 피에르 교수는 막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 강사다. 학생들과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술자리를 즐긴다. 지적이고 잘생긴 데다가 모든 권위에 맞서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가 탈권위에 대항한다고 해서 그의 권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는 엄연한 교수이지만, 그는 자신의 연약한 영혼을 핑계 삼아 여자 제자들에게 접근한다. 술자리에서 제자를 추행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그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결국 한 제자의 '미투' 폭로가 있은 뒤에야 진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탈권위를 외쳤던 그지만, 그는 그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제자들을 성폭행했던 것이다. 이 글은 '젊은 여자'를 좇는 남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 프랑스 인류학자는 말했다. 인간의 자아는 나이 들어감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젊은이의 영혼을 지닌 채 살아가는 비극적인 운명 속에 놓여있다고. 언제까지라도 자신이 어리고 젊었을 때처럼 연약한 상태로, 애정을 갈구하는 위치에 서있다고 착각하면서." 50p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나는 그렇게 되리라 믿어."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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