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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un 25. 2023

내집이 갖고싶어

동거부터 할게요 4화





"같이 집을 사는 건 어때?"


결혼하자는 말에는 "시간을 갖자"던 나였으나 집을 사자는 남자친구 말에는 귀가 솔깃했다. 고만고만한 월급에 학자금 대출까지 갚은 나로선 직장생활 7년 차에도 모은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 시내 아파트는 커녕 빌라 한채 사기도 어려운 돈이었다. 게다가 당시 집값이 오르면서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를 펴던 때라 혼자 집을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19살부터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이사를 7번 다녔다. 2~3년에 한 번 꼴이다. 나보다 6살이 많은 남자친구는 더 많은 집들을 거쳤다. 그가 지금까지 이사 다닌 횟수만 15번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어디에 살든 불편한 게 없었다. 돈이 없어서 예산을 맞는 집을 찾는 게 1순위였다. 저렴한데 심지어 창문이 뻥 뚫려있고 조용하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방을 고르다가 셋방살이도 했다. 2009년 보증금 300만원 정도에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가 30만원이 채 안됐던 것으로 기억난다. 벌써 10년이 더 된 일이지만 서울에선 그 당시 대학가도 고시원을 제외하곤 월 30만원짜리 방을 찾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셋방살이를 하던 집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손녀 이렇게 여자 셋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여자들만 있어 나름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 고른 집이었다. 내 방은 30평대 아파트의 작은 방 크기 정도였다. 2평 남짓. 방의 오른쪽은 싱글침대가, 나머지 왼쪽은 작은 책상과 책꽂이, 의자가 차지했다. 침대를 두고 남은 공간에는 옷을 걸어둘 행거를 뒀다. 옷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매년 봄이 되면 겨울옷을 택배박스에 담아 본가로 보내곤 했다. 그리고 찬바람이 부는 10월 말이 되면 다시 겨울옷을 받아 행거에 걸었다. 좁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집에서 보내준 김치와 멸치볶음 등 마른반찬을 둘 미니 냉장고와 전기밥솥, 냄비와 그릇을 담아둘 작은 수납장, 20인치 남짓한 뚱뚱한 TV 등.


부엌과 화장실은 함께 사는 주인집과 같이 썼다.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다른 사람이 먼저 사용하고 있으면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방에서 TV를 보며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배고파도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리거나 물소리가 들리면 기다렸다. 현관이 하나뿐이라 내 방에 가려면 거실을 지나쳐야 했는데, 혹시나 늦은 밤 주인집 식구를 깨울까 봐 발꿈치를 들고 방까지 걸어가곤 했다.


처음 한 달 동안 내 골칫거리는 개미였다. 그 집에는 개미가 참 많았다. 친구들은 내 이야길 듣고 "천적인 바퀴벌레는 없겠다"며 웃었지만, 벌레를 싫어하는 나로선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팔이 간지러워서 보면 개미가 기어다니곤 했다. 한 달 동안 개미박멸작전을 벌였다. 매일 같이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뒀고, 보이는 족족 휴지로 눌러 죽였다. 그렇게 한 달여만에 적어도 내 방에선 개미가 사라졌다. 여전히 거실과 부엌 등 다른 공간에는 개미가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내 방에선 개미가 어디갔는지 두문불출했다. 개미박멸작전에 성공한 나는 그 방에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잠을 잤다. 그렇게 그곳에서 2년 넘게 살았다.


그 이후 셋방살이에선 벗어났지만, 내가 산 곳은 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원룸이었다. 2평에서 3평으로, 3평에서 5평으로 이동하는 정도였다. 나 혼자 누울 공간이 있었다가 이사가면 친구를 한 명씩 더 데려올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뿐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4년차가 될 때까지도 나는 작은 원룸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돈이 없어서 기대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돈이 없는데 무언가를 기대하기 시작하면 현실에 대한 불만만 커진다. 그래서 학생 때 나는 아예 '욕구없음'을 선택했다. 주인집과 화장실, 부엌을 같이 쓰고 2평짜리 방 한 칸에서 살았던 게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그때의 나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집을 구했다고,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한데 오히려 주인네와 함께 살아서 안전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돈을 벌고 전세살이를 시작하면서 기대가 커지고 욕심이 늘었다. 만년 원룸만 살다가 처음에 투룸 전셋집으로 이사 갔을 때만 해도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지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집이라 모든 게 새것이었고, 시스템에어컨에 빌트인 냉장고, 세탁기까지 있는 말 그대로 '풀옵션' 집이었다. 전셋집인데도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만 10번 남짓 한 것 같다. 이사 뒤 생전 처음으로 식물이란 걸 기르기 시작했다. 제육볶음, 샤브샤브, 파스타 등 집에서 그럴듯한 음식을 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괜찮은 집이 생기자 욕심도 덩달아 생기기 시작했다. 그 집은 비행기가 다니는 길목에 있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창문 열어두길 좋아하는 나인데, 평일 주말 낮밤을 가리지 않고 새벽 비행기 굉음으로 잠에서 깼다. 이 동네 아이들은 비행기를 그릴 때 배를 그린다고 할 정도로, 비행기가 낮게 나는 곳이다. 나는 비행기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무와 풀도 그리워졌다. 식물을 키우면서 나무와 풀이 좋아졌는데, 당시 살던 동네에는 공원 하나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공원이 걸어서 40분 넘는 거리에 있었다. 그 공원마저 산책하면서 비행기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평온한 산책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용하고 공원이 가까이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왕이면 이사도 그만 다니고 싶다는 마음. 당시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 집을 샀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들도 아마 내 그런 욕심에 한 몫했을지 모르겠다.



혼자선 어림없어도 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둘이 모은 돈을 합치고, 주택담보대출과 함께 신용대출도 받을 수 있었다. 혼자선 살(buy) 수 없는 집을 둘이선 살 수 있었다. 때마침 남자친구의 전셋집 만기일이 돌아오면서 우리는 함께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평화롭고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곳. 결혼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 내 집을 갖고, 좋은 거주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동거생활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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