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별 Jul 24. 2023

"저 동거해요" 말하기

동거부터 할게요 6화 



"혼자 사세요?"

"아뇨. 남자친구랑 같이 살아요."


혼자, 또는 가족이랑 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면 열에 아홉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황한 마음을 부여잡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 대놓고 놀라거나 당황한 티를 내면 예의가 아니라고 다들 생각한다. 대부분은 "아, 남자친구랑 사시는구나..."라면서 말을 얼버무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친분이 좀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걱정을 보탠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고 그건 아니지 않나" 이런 투의 걱정들. 일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40대 중후반부터 60대까지이다 보니 여전히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동거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아는 만큼 처음엔 나도 친한 사람이 아니고는 동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동거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는 게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가끔 왜 동거를 하는지 꼬치꼬치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설명하기 귀찮기도 했다. 속으론 걱정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직장동료나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동거사실을 다 알렸는데 남자친구랑 헤어지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걱정. 사람들은 남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길 즐긴다. 


그랬다가 나중에는 귀찮아져서 누가 물어보면 "동거한다"라고 말했다. '아, 이 사람이랑은 10점 중에 7점 정도 친하니까 말하고, 저 사람이랑은 10점 중에 5점 정도밖에 안 친하니까 말을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친소 정도로 동거 여부를 말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서울 시내에 산으로 둘러싸인 30평대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고 말하면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의 거주현황에 대한 질문은 보통 "어디 사세요?" "거기 왜 사세요? 부모님이랑 사시는 거예요?" 등으로 이어지는데, 혼자 산다고 하면 "거기 왜 혼자 사세요?" "집 매매하신 거예요?" 등 질문이 이어져서 아주 귀찮은 상황에 처하곤 했다. 


친한 친구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반응은 "얘는 원래 이런 애야"라는 것. 원래 자기 멋대로 사는 애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동거를 한다고 말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두 번째 반응은 역시나 걱정이다. 동거를 시작하고 만날 때마다 "도대체 결혼은 언제 하냐"라고 묻는다. 걱정과 재촉의 의미가 담긴 반응. 





어려서부터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없었다.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 동거부터 해봤으면 싶었다.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보다 결혼 전에 살아보면 좋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되레 컸다. 외국만 해도 동거는 자연스럽지 않나. 동거하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동거는 커플이 고를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다. 나도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결혼이나 동거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반자로 삼고 싶은 사람과 공동생활을 하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결혼'과 '동거'의 차이는 결혼이 제도권이라면 동거는 비제도권이라는 것뿐이다. 제도권 안에 있는 결혼은 국가가 법으로 당사자들을 보호해 준다. 사랑이 식더라도 제도 속에 묶인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법상 부부는 같이 살며 서로를 부양하고, 생활상 협조를 해야 한다. 일상적인 가사에 대해서 부부는 서로 연대 책임을 지고 각자에 대한 대리권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동거는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에는 사실혼을 인정해 주는 국가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동거가 사실혼으로 인정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법원이 판단했을 때 주관적으로는 '혼인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 말은 어렵지만 결국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비제도권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정상성', '평균'의 범주에 벗어났단 뜻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은 '정상성'이나 '평균'을 추구하는 나라인데, 여기서 벗어나면 이상하게 보이는 거다.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 언제쯤이나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을 보지 않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전 05화 타인이 맞춰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