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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15. 2023

이 사람이랑 살아도 될까

동거부터 할게요 3화


'무조건 서울로 가야지.'

고등학교 때 내 목표는 '상경'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남들처럼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강한 동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집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머리가 크자 아늑하기만 했던 집이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중학생 때부터 슬슬 시작된 방황 아닌 방황으로 밖으로 도는 일이 많았다. 당시 엄마 아빠는 보수적이고 엄격했다. 특히 아빠는 힘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고 했다. 말을 안 듣는 내게 큰 소리를 치거나 손찌검을 하는 일이 잦았다. 대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내 말을 모두 말대꾸로 여겼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생 때 조금 늦은 시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에 데려다준다는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늦은 귀가가 걱정됐는지 아파트 중앙 현관 앞에서 날 기다던 아빠와 우리가 딱 마주쳤다. 아빠는 그날 처음 본 남자친구의 뺨따귀를 후려쳤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을 지금도 잊기 어렵다.


아빠랑 싸우는 일이 잦아질수록 독립에 대한 내 갈망도 커졌다. 나는 노력 끝에 결국 독립에 성공했다. 19살에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히 혼자인 서울살이는 아니었다. 기숙사에서 2인용 방에서 살기도, 주인 네가 사는 공간에 방 한편을 빌려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완전히 독립된 방에서 혼자 살 수 있었다. 내 삶에 대해 잔소리하거나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없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평화로웠던 자취생활에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나 이번 주말에 서울로 올라갈게."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던 동생의 전화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동생이 갑자기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고향집에서 떠나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겠다는 말이었다.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하겠다는 대견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집으로?


네 살 터울인 동생은 내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 서울로 온 뒤 우리 집엔 여러 풍파가 닥쳤다. 아빠 사업이 망해 온 집안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아빠는 대장암을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울에 있던 나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뿐, 이를 보거나 직접 겪진 않았다. 중학생인 동생은 이 모든 상황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당해야 했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평소 동생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동생과의 나의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둘이 사는 건 쉽지 않았다. 원룸 반쪽은 여자 둘의 옷으로 가득 찼고, 한쪽은 둘이 몸을 간신히 누울 공간이 남았다. 생활 패턴도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갓 입사한 직장 생활을 하느라 분주했다. 거의 매일 늦게 잠들어 매일 아침 6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라 밤에 잠을 자는 게 중요했다. 동생은 오후에 출근해서 밤늦게 끝나는 일을 했다. 늦게 일을 마치고 새로운 도시에서 사귄 친구들이랑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는 게 일이었다. 그러면 내가 자고 있을 때 들어와서 밤잠을 깨우곤 했다. 밖으로 나도는 동생 탓에 집안일은 모두 내 일이 되면서 불만이 쌓여갔다. 다툼이 잦았고 자매 관계도 겉돌았다.


약 2년 넘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내가 선택한 건 방이 2개인 전셋집으로 이사 간 거였다. 방을 따로 쓰니 그나마 다툼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과 공간과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생활습관을 맞춰가는 건 큰 스트레스였다.




이런 경험에 개인주의적인 성향까지 강한 나로선 결혼을 결심하기 더욱 힘들었다. 피가 섞인 가족과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평생을 따로 살아온 남과 산다고? 한숨부터 나왔다. 남과 24시간 365일을 함께 하는 삶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고 고민한 이유도 이 부분이 컸다. 까다롭고 지랄맞은 내가 이 사람과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남자친구가 아니라 내가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살길 결정한 이유는 남자친구를 믿어서다. 기분(감정)이 1에서 10까지 있다면, 남자친구 기분은 대부분 5에 놓여있었다. 내 기분은 1~10을 왔다 갔다 했다. 내가 변덕을 부리더라도 5에서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둘이 만날 수 있었다. 권위적이거나 다혈질 성격을 싫어하는 나로선 무던한 남자친구 성격도 좋았다. 5년 넘은 연애 기간 동안 남자친구가 나한테 화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고, 요즘말로 하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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