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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09. 2023

비혼? 아니, 결혼 울렁증이요

동거부터 할게요 1화 



"결혼하자." 


"왜?" 


나와 남자친구는 연애 내내 같은 대화를 맴돌았다. 남자친구가 "우리 결혼 언제하지?"라고 물으면, 내가 "결혼을 왜 해?"라고 묻는 패턴이 반복됐다. 내가 결혼을 무조건 하기 싫은 건 아니었다. 정말 궁금했을 뿐이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남자친구는 여기서 항상 말문이 막혔다. 보통 "하고 싶으니까..."라며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나는 다시 추궁 아닌 추궁을 했다. 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그럼 남자친구는 "대화의 출발점이 아예 다르다"며 입을 다물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따로 분리해서 보면 좋은 사람이었다. 둘 다 남한테 싫은 소리 제대로 못하고 착했다. 엄마는 내성적인 편이다.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나와 동생을 위해 요리하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일로 바쁜 할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가족'과 '남편'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아빠는 외향적인 편이다. 특히 젊은 시절엔 술과 친구, 운동을 좋아했다. 키도 훤칠하고 농담을 좋아해 밖에 나가면 인기가 좋았다. 문제는 매일을 빠짐없이 술에 절어 새벽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하는 일도 영업일이었다. 주말에는 운동을 하느라 아빠는 바빴다. 수영, 라켓, 볼링, 골프, 마라톤 등. 아빠가 안 해본 운동을 손에 꼽을 정도다. 


성향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싸움이 잦았다. 어린 시절 방에서 엄마 아빠 싸움소리를 들으며 숨죽였던 밤이 여러날이었다. 다혈질인 아빠는 술에 취하면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엄마를 때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물건을 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엄마도 뒤지지 않았다. 새벽 내내 둘의 큰 소리가 집을 오가곤 했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나면 며칠 간 냉전이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집에서 살림을 할 때라 아빠와 싸운 뒤 엄마는 안방에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나는 아빠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거나 어색한 외식을 했다. 애교는 털끝만큼도 없었던 나는 둘 사이에서 싸움을 중재할 묘수가 없었다. 그저 이 폭풍이 빨리 지나가기를, 하고 바랐던 것 같다.


내가 10대에 들어서도 엄마 아빠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다퉜다. 대부분 별다른 이유 없는, 맥락 없는 다툼이었다. 매사 이런 식이다. 평상시처럼 둘이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둘 중 하나가 버럭 큰 소리를 지른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 "그래, 너 잘났다", "됐다, 말을 말자" 이런 말이 오가며 대화가 끝난다. 그럼 그날의 집 공기는 무거웠고, 나와 동생은 눈치보기 바빴다. 둘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주고받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엄마 아빠한텐 미안하지만, 결혼한 부부에 대한 긍정적인 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땐, 결혼을 하면 남자가 변할 거란 착각에 빠져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4년 넘게 연애했는데, 결혼하니 아빠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자란 나는 결혼이 무서웠다. 지금 이렇게 달콤한 남자친구가 결혼 뒤 완전히 바뀐다고? 악몽이었다. 


머리가 커서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좋으면 같이 살면 되는 거 아닐까. 그냥 같이 살아도 되는데, 왜 굳이 결혼이란 제도에 서로를 묶는 걸까. 상대방을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제도 속에 자신을 가두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게다가 19살 때부터 독립해 혼자 사는 게 익숙했고, 만족스러웠다. 


비혼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남자친구와 협의 끝에 결혼과 비혼, 어디 그 중간즈음에 있을 만한 동거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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