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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un 08. 2021

앉은뱅이 거지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에세이 <모레알만 한 진실이라도>, 세계사 




  < 그날도 물론 그가 앉은뱅이란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앉은뱅이가 아니란 증거 또한 없었다. 그냥 빗속의 그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무참했다. 나는 한순간 무참함 느낌으로 숨이 막히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곤 잠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요컨대 나는 내 눈앞의 앉은뱅이 거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를 못하면서 거지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예비지식을 갖출 만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비지식 때문에 나는 거지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확인한 그의 비참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일을 생략하면 지금도 통장과 함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누를 수 없다. 믿지 못하는 게 무식보다 더 큰 죄악이 아닌가도 싶다. 거지에 대한 한두 푼의 적선이 거지를 구제하기는커녕 이런 적선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구제책이 늦어져 거지가 마냥 거지일 뿐이라는 제법 똑똑한 생각을 요즈음은 어린이까지도 할 줄 안다. 사람들이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불쌍한 이웃을 보면 이런 똑똑하고, 지당한 이론 대신 반사작용처럼 우선 자비심 먼저 발동하고 보는 덜 똑똑한 사람의 소박한 인간성이 겨울철의 뜨뜻한 구들목이 그립듯이 그리워진다. 30~32p>


  기억력이 나쁜 나는 대체로 에피소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나의 나쁜 기억력을 두고 내 지인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쪽은 내가 멍청해서라고, 또 다른 쪽은 내가 너무 주변에 무관심해서라고 한다. 


  심지어 내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에피소드'라고 할 게 없을 정도다. 에피소드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내 기억은 '장면'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기억 대부분은 현장의 소리, 냄새, 풍경이 어우러져있는 3초 남짓의 영상 조각이다. 


  그런 내게 20년 넘게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와 함께 어딜 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파란 불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모금함을 든 40대 중년 여성이 구걸을 하러 다가왔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모금함을 가리키며 구걸했지만, 엄마는 모른 체했다. 그때 엄마와 그녀 사이에 서 있던 나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다. 무안함, 동정심, 가슴 저림. 나의 심란한 얼굴을 봤는지 그녀는 내 손을 살짝 잡아줬다. 아직도 그때 나를 감싸던 풍경이 떠오른다. 


  그러던 나도 어른이 되자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잘 지나칠 수 있게 됐다. 언젠가부터 거지들도 집에 갈 땐 외제차를 끌고 간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농담삼아했다. 혹은 돈을 주면 어차피 술을 사 먹으니 굳이 아깝게 구걸하는 이에게 돈을 줄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의심 많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거지를 믿지 못하게 됐다. 


  작가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고백할 때, 나도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다. 잘했다 잘못했다 나무란 이는 없었지만, 혼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 나의 소박한 인간성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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