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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반복 재생되는 꿈을 꿔요

by 한걸음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서 나올 때가 있어요. 당신은 어때요?


난 미로 같은 공간에 꼼짝없이 갇히거나 볼일이 너무너무 급한데 찾아간 화장실이 끔찍하게 지저분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꿈을 반복해서 꿔요.


미로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공간이 비좁아서 엎드려야 앞으로 조금 움직일 수 있는 형태예요. 진흙으로 구워 만들어진 듯한 단단한 미로는 내 몸 크기와 거의 비슷해서 돌아 누울 수도 일어설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어요. 나는 미로 어디쯤 엎드려있는데 여기가 중간쯤인지 입구와 가까운지 출구 부근인지도 알 수 없죠. 어슴푸레한 빛이 희미히게 미로 안을 밝히고 있긴 하지만 그 빛 만으로 방향을 가늠하긴 어려워요. 여기 갇힌 채로 지낼 순 없고 출구 쪽이든 입구 쪽이든 어디로든 저는 기어가야 해요. 막막하죠. 저는 꿈속에서도 갑갑함을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화장실도 만만치 않아요. 저는 너무너무 급해요. 가까스로 화장실을 찾았는데 공중화장실이라 10칸 정도 되는 경우도 있고 달랑 한 칸뿐일 때도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간 화장실에는 분변이 가득 쌓여있고 볼일을 처리하고 난 휴지도 엉망으로 널려 있어요. 옆칸 문을 열어보니 더러운 건 여전하지만 아까보단 덜해서 숨을 참고 볼일을 보려고 하면 닫으려고 잡은 문이 천정에서 절반 높이 밖에 안 돼요. 서부영화를 보면 카우보이가 술 마시러 바에 들어가는데 그 문이 손바닥만 하잖아요. 딱 그만한 크기예요. 나를 보호해 줄수도 없는 게 문이랍시고 달랑달랑 달려있는 거예요. 주위에 아무도 없지만 누구든 나를 쳐다볼 수 있는 상황이라 매우 수치스러워요. 그 칸에서 나와 옆으로 들어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볼일이 급한 나는 발을 동동 굴러요. 그 더러움을 참고 내 욕망을 해소할지 아니면 요의를 좀 더 참아볼지 그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꿈에서 깨어나요.


나는 내가 지금 힘든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지 알아채는데 다소 무감한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역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일상에서 좀 더 쉬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나를 달래려고 노력해요. 머리는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내 몸은 지금 힘들다는 뜻이니까요.


반복되는 꿈은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꾸고 나면 참 희한하다 싶어요. 어떻게 이렇게 같은 꿈을 여러 해에 걸쳐 꿀 수 있지. 현실의 나는 이만큼이나 컸는데 꿈속의 내 행동은 매번 똑같고 미로나 화장실이 모양만 살짝 바뀔 뿐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은 비슷하거든요.


요즘은 미로 꿈은 잘 안 꾸지만 화장실 꿈이 계속되긴 해요. 다행히 이번엔 화장실은 깨끗한데 문이 반만 있다거나 문은 제대로 달려있는데 더러운 걸로 바뀌었어요. 그래도 변화가 약간은 있죠? 꿈이 성장한 것인지 내가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네요.


칼 융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심리학자는 꿈은 무의식을 반영하는 거라고 하죠. 나는 어떤 대단한 억압으로 나를 지긋이 누르고 있는 걸까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왜 그동안 같은 꿈에 당하고만 있었을까, 무력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왜 그 상황에 압도되기만 했을까 싶네요. 다음에 또 비슷한 꿈을 꾸게 되면 진흙으로 구워진 미로 안에서 “어떤 놈이 나를 여기 가뒀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더러운 화장실에 친구라도 데려가 보려고요. 그러고 나서 다음 꿈에는 뭐가 나오는지 다시 얘기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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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