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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스크류바

엄마를 향한 내 감정은 무슨 색인가

by 한걸음

“엄마가 부탁할 게 있는데….

엄마가 수술을 받아야 해. 일주일 동안 병원 입원할 건데 간병해 줄 수 있니? 알잖아, 너희 아빠는 옆에 있어도 도움이 안 돼.

오빠한테는 엄마 수술한다는 거 얘기하지 말고. 걱정하니까.”

대뇌동맥류 질환이라고 했어. 뇌를 가로지르는 혈관이 막혀서 꽈리처럼 부풀었는데 그냥 두면 뇌출혈이 일어나는 거라고 그래도 직전에 발견했으니 다행이라고. 자주 다니는 내과 의사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증상을 간단히 물어보다가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권유를 들은 거더라. 엄마는 사는 곳에는 믿을만한 큰 병원이 없어서 한 시간 반을 달려 옆 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어. 신경외과 전문의인 담당 교수는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날짜를 정하자고 했대.

전화를 받으면서 처음에는 걱정이 됐어. 엄마가 몸이 약한데 잘 버틸 수 있을까, 수술은 잘 되는 걸까, 무탈하게 회복할 수 있는 걸까. 엄마는 진료의뢰서를 받아 들고 큰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를 확정할 때까지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무서워서 마음을 졸였을까.

동시에 내게 간병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하는 엄마가 안쓰러웠어. 내가 자식인데 간병하는 게 당연하지, 엄마는 왜 저렇게 미안해하면서 물어보는 걸까. “너도 바쁜데…. 엄마가 시간을 뺏어서 어떡하지….” 말끝을 흐리니까 부아가 더 치밀더라고. “지금 일이 중요해? 엄마가 큰 수술을 하는데 당연히 내가 가봐야지. 바쁜 게 대수냐고!” 나는 속상한 마음을 등 뒤에 숨기고 엄마에게 큰소리를 쳤어. 엄마에게 화 난 게 아닌데,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화가 난 건데. 근데 이런 건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잖아. 그렇게 작고 가여운 목소리로 말하면 습자지 같은 얇은 마음이 금방 찢어지고 만다고.

그러고 나서 겹치는 감정은 연민이었어. 간병인 역할도 못 하는 남편을 둔 엄마가 불쌍하더라. 아빠가 일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대퇴부 골절로 입원했을 때,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도 언제나 간병하는 사람은 엄마였거든. 하지만 정작 엄마가 입원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엄마는 아빠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어. 누구를 챙겨본 적 없는 남편은 곁에 있어 봐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을 게 뻔하니까, 무슨 말을 하면 화부터 내는 아빠가 엄마는 오히려 더 불편했겠지. 아빠가 곁에 있으면 엄마는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자기를 간병하러 온 남편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을 거야.

오빠에게 말하지 말라는 당부에 명치에서부터 치고 올라온 감정은 분노였어. 왜? 엄마가 전신마취하고 이렇게 큰 수술을 하는데 왜 아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해? 오빠도 알아야지. 자식이 걱정하는 게 그렇게 미안해? 나는? 그럼 나한테는 왜 얘기하는 건데? 이런 건 비밀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가족이잖아. 서로 믿고 의지하고, 힘든 일 있을 땐 털어놓고 기대기도 하는 거, 그런 게 가족 아니야?

엄마의 몇 마디에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다가와 휘몰아쳤어. 나는 엄마에게 어떤 자식인 걸까. 엄마는 힘들 때 누구에게 기대는 걸까.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견디고 애써 침착하려는 태도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건가 보다. 엄마는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자식에게 부담이 되는 게 못내 자존심 상하고 싫고 미안한가 봐. 근데 어쩌지? 나는 힘들면 엄마에게 달려갈 건데, 지치고 상한 날개를 안아 들고 “엄마 나 아파. 나 좀 안아 줘”라고 말할 건데. 엄마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더라고.


근데 그거 알아? 오색스크류바를 손바닥에 놓고 비비면 그게 대체 무슨 색인지 정의할 수가 없어. 내 마음이 그래. 엄마를 생각하면 다양한 감정이 태풍처럼 빠르게 빙빙 돌아서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 사랑인지 연민인지 미움인지 분노인지 걱정인지 보이지 않아.


가끔은 시계 방향으로 호로록 돌아가는 색이 어지러워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싶고 또 가끔은 정신없이 비벼대는 손바닥을 탁 하고 잡아채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기도 해. 엄마는 내게 그런 사람이야.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게 하는 사람. 복잡하고 어려워서 슬쩍 놓아버리고 싶다가도 단전 아래에서부터 죄책감을 일으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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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