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충격부터 계약 팁까지
일본에 막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현실은 '집 구하기'였다.
한국에서는 꽤 여러 번 이사를 해본 터라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단순한 생활 팁 정도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에 가까웠다.
예약 없이는 집도 못 본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근처 부동산에 들러 물었다.
“혹시 지금 집 보러 갈 수 있을까요?”
직원이 정중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약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매물은 아직 입주자가 살고 있었고, 집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날짜를 조율해야 했다. 보통은 퇴근 이후나 주말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집 하나 보자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그 조심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시키킹, 레이킹… 듣도 보도 못한 계약 조건
부동산에서 집 설명을 듣는데,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 줄줄이 나왔다.
시키킹, 레이킹, 관리비, 열쇠 교환비, 화재보험료, 청소비…
처음엔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키킹은 보증금 같은 개념으로 나중에 일부 돌려받을 수 있지만, 레이킹은 그냥 감사 인사로 주는 돈이라며 반환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감사의 마음'을 계약서에 금액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가 산다는 건 단순한 거래 그 이상이라는 인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식 정중함이 이런 곳에도 담겨 있었다.
계약은 빠르지 않지만, 꼼꼼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도 당장 계약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보증회사 심사를 먼저 받아야 했고, 때에 따라선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외국인일 경우에는 한층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계약서도 만만치 않았다. 한자가 가득한 일본어 문장을 하나하나 해석하느라 몇 시간이나 걸렸고, 읽을수록 모호하게 느껴지는 표현들에 주의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집을 구하는 건 '과정'이 아니라 '과업'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머무는 집을 만났다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친 끝에,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1LDK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햇살이 잘 드는 거실 창문을 열면, 작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에는 벌레 소리가 들리고, 아침이면 고양이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도심 한가운데서 벗어나, 천천히 나를 정돈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 느림 덕분에 더 단단한 마음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집을 구하려는 분들께 드리는 조언
보증회사 심사에 며칠이 걸릴 수 있으니, 일정은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레이킹 없는 집도 많다. 조건을 잘 검색하면 초기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입주 전에는 쓰레기 분리수거 규칙을 반드시 확인하자. 지역마다 제도가 다르다.
집 구조뿐 아니라 방음, 일조량, 습기 상태까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집을 구하는 그 며칠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제일 먼저 체감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내게, 이 나라는 다른 삶의 속도를 가르쳐주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조급해지는 대신, ‘지내도 괜찮은가’를 고민하게 하는 느린 결정의 리듬.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문화 속에서,
그 집은 단지 머무는 공간을 넘어 내 마음을 조금씩 정돈해주는 첫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