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상 예절 (일본스토리2)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순간들

by 라일락향기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교적 잘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멀지 않은 나라였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속에서 이미 익숙해진 문화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일상으로 들어가 보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나 제도 문제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몸짓과 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예절의 차이였다.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옆엔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한국이라면 가볍게 인사하거나, 미소라도 건넸을 텐데, 이곳은 달랐다.


그분은 내 눈을 피하듯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 아무 말 없이 도착할 층을 기다렸다.

그 조용함이 어색해서 괜히 버튼 쪽을 한 번 더 눌러보거나, 가방을 정리하는 척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불필요한 시선이나 말 걸기’를 조심하는 것이 배려라는 것을.


함께 있는 시간이 길수록 오히려 더 조용한 것이 예의였다.


식당에서의 '조용한 대화'

음식점에서 친구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옆자리의 한 커플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고,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뭔가 잘못된 걸까? 물어보기도 전에, 내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그제야 주변을 살펴봤다.

옆 테이블 손님들은 거의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크고 밝게 웃는 대신, 작은 소리로 엄마의 팔을 잡고 말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과 조용히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그제서야 느꼈다.

일본에서는 ‘식사 시간의 소리’마저도 배려의 대상이었다.


인사보다 중요한 ‘고개 숙임의 각도’

처음엔 인사를 참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단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뿐인데, 직원들은 모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도 상황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고개를 15도만 숙이면 ‘가벼운 인사’, 30도는 ‘정중한 인사’, 45도는 ‘사과 또는 깊은 감사’의 의미가 담긴다고 했다.


처음엔 고개를 그 정도로 숙이는 게 과하다 느껴졌지만, 반복되는 인사 속에 담긴 상대에 대한 존중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말보다 자세가 먼저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감사합니다'는 입에 익혀야 하는 습관

가장 많이 들은 일본어는 아마도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였을 것이다.

물건을 건넬 때, 계산할 때,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받을 때, 심지어는 누군가의 방해를 피해서 지나갈 때조차도 감사 인사를 했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에겐 이 모든 인사가 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건 단지 감사의 의미만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지금 배려를 받고 있어요'라는 조용한 선언처럼 느껴졌다.


당연한 건 없다는 걸 배웠다

일본에서 살면서 내가 익숙했던 예절과 행동들이 모두 ‘상대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배려의 방식이 다르고, 존중의 표현이 다르고, 침묵조차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어떤 사회는 ‘말로 표현하는 따뜻함’에 익숙하다면, 또 다른 사회는 ‘조용히 비켜주는 친절’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중심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태도’였다.

예절은 규칙이 아니라, 문화의 언어이자 마음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중이다.

다음 글에서는 일본의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겉보기엔 단순해 보여도, 그 안에 깃든 질서와 배려는 한 나라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조용한 깊이에, 오늘도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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