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 섬 – 이끼의 숲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숲, 비 내리는 섬에서 느낀 자연의 압도감

by 라일락향기

비가 오는 섬이었다.

아니, 거의 항상 비가 오는 섬이라고 해야 맞다.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야쿠시마는 연 400일 이상 비가 내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곳이다. 바다는 거칠었지만 섬은 조용했고, 나는 비 내리는 야쿠시마의 숲에서 숨을 들이쉬었다.


숲은 녹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떤 초록도 이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나무 뿌리 사이로 촘촘하게 퍼진 이끼, 가지마다 고요히 매달린 물방울, 그리고 마치 시간을 멈춰 놓은 듯한 공기.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마치 내 숨도 숲에 닿아 이끼처럼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령공주』의 모티브를 얻은 숲이다.

영화 속 야쿠루가 뛰놀던 바위들, 산신령이 나타났던 고목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경계를 허물며 공존을 모색하던 그 세계.

그 모든 장면이 실재하고 있었다.

단지 그가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끌어낸 것뿐이다.


산중 깊숙이 들어가면 ‘조몬 스기(Jomon Sugi)’라는 나무가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로, 그 나이는 약 7,200년.

숫자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 앞에 선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사람은 이렇게도 작고, 자연은 이렇게도 오래될 수 있구나.

그저 그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이 느껴졌다.


야쿠시마는 단순히 자연이 아름다운 섬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오래된 생명의 층이 쌓여 있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나는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우산은 소용이 없었고, 등산화는 금방 진흙에 젖었지만, 그 모든 불편이 오히려 숲과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야쿠시마는 마치 짧은 꿈처럼 기억 속에서 빠르게 젖어 들었다.

하지만 그 꿈은 생생했고, 내가 다시 ‘초록’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혹시 언젠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원령공주’의 숲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곳, 야쿠시마를 떠올려 보시길.

당신 안의 고요와 야성, 두 감각 모두가 그곳에서 깨어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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