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의 바닷길

에노덴을 타고 만난 하루카의 여름

by 라일락향기

가마쿠라는 여름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도시 같다.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약 한 시간 반,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오면 서서히 바다가 보이고, 짧은 전철 ‘에노덴’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이 작은 열차를 타고 바닷길을 달리는 순간, 이미 마음속의 여행은 시작된 셈이었다.


작고 낡은 듯한 에노덴은 두량짜리 전철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도시가 아니라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드라마 ‘슬로우 댄스’나 ‘우리들이 있었다’에서 자주 봤던 바로 그 배경, 그 골목과 그 해변.


차창 너머로 하이쿠 같은 풍경이 흘러간다. 바다가 열리는 순간, 승객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작은 탄성을 내지른다. 그 조용한 감탄마저도, 이 여름에는 꼭 있어야 하는 소리 같다.


하세역에 내려 고마치 거리를 걸었다. 오래된 찻집, 고양이 굿즈 전문점, 작고 손때 묻은 가게들이 마치 “어서 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한참을 그 가게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동네가 있다는 건, 살아보면서 처음 알게 된 기쁨 중 하나다.


해가 기울 무렵, 에노시마까지 걸어갔다.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낚시하는 아이들과 땅거미 질 무렵의 섬 실루엣. 해변 너머로 후지산이 어렴풋이 보일 듯 말 듯 붉게 타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여름의 기억이 내 안에 부드럽게 쌓였다.


나는 이곳이 왜 그렇게 많은 일본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드라마 속 하루카도, 실제의 나도, 그 풍경 앞에서는 똑같이 조용해졌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다시 에노덴을 탔다. 전철 안에서 만난 풍경들이 짧은 시처럼 스쳐갔다. 이 여름은 그렇게 내 안에 남았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기억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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