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에는 '끝맺음'이 없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끝이 없다, 끝이>

* 저자 : 김동건(가사노동자)


10년 전, 급격히 악화한 건강 때문에 30년 직장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내가 은퇴하는 날이 오면 아내가 사회활동을, 내가 살림을 하기로 미리 정해두었기에 그저 덤덤했다. 결혼 전 자취 생활도 오래 했기에 가사노동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까짓 집안일쯤 간단히 해치우고, 남은 시간은 조용히 음악 들으며 책 읽는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1+3=4가 아니다. 자취할 때보다 사람은 셋 늘었을 뿐인데, 노동 강도는 열배, 스무배 이상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음식 준비부터 신경 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식구 각각의 건강과 취향을 모두 고려해 식단을 짜고, 때맞춰 식재료를 사야 한다. 설거지는 수시로 해야 했고, 화장실 세면대는 왜 그리 쉽게 지저분해지는지. 매일 가족들 옷을 살피고 위생도 책임져야 했다.


세금 및 관리비 처리, 가전제품 수리 점검, 아이 과제물 준비, 쓰레기 처리에 옷 정리.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챙겨야 할 것들이 있었다. 어디 가족뿐이랴. 친척, 이웃, 주거환경, 가재도구까지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가사노동에는 '끝맺음'이 없다. 아침식사를 하면 점심이 기다리고 있다. 빨랫거리는 끝없이 나온다. 하나의 과정이 계속 반복되니 휴일도 없다. 일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다. 온 가족이 집에 있어 더욱 손이 많이 가는 날일 뿐이다.


육체가 잠시 휴식하는 동안도 정신은 쉴 수 없다. 간식시간을 판단해야 하고,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빈도도 제한해야 한다. 일이 생각만큼 되지 않는지 한숨을 내쉬는 아내의 표정도 살펴야 한다.


아이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을 돌보는 돌봄노동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극한의 감정노동이다. 순간마다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는 수시로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동료들과 술 한잔 나누며 떠들던 뒷담화의 시간이 주부에겐 없다.


이제 가사노동도 가치 있는 하나의 노동이라고 인식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사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 활동에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노회찬재단과 한겨레가 손잡고 2022년 5월부터 '6411의 목소리'를 매주 연재해왔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탔던 6411번 새벽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래에서, 노동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가길 기대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