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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관 Nov 08. 2021

[심리학관/박정민의 수다다방]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

Work & Culture / Support Network

요새 여러가지로

안 돌아가는 머리에다가

날로 뻣뻣해지는 몸까지

움직여보려고 끙끙대다보니

무리를 했는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졌습니다. ㅠㅠ.


이럴 때에 뭔가를 탁! 먹거나

뭔가를 팍! 지르거나

뭔가가 하늘에서 쾅!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

한방에 없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헛된 꿈을 가져봅니다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런 게 있을리 없죠.

하하하.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한방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인간이 동기부여되는 원천 중에는

Peak experience라는 것이 있다고 하잖아요.


매슬로우가 이야기한

인간의 욕구위계중 가장 높은 욕구인

자아실현을 한 경우 느낄 수 있는 절정 경험이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과 비슷한 이야기죠.

제가 좋아하는 '몰입'의 개념정의 중에

‘지루함과 불안함을 넘어서서'

(beyond boredom & anxie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 경험해보고 싶지만,

자주 도달하기는 어려운 상태죠. ㅠㅠㅠㅠ)


아이, 씨.


"그렇게 어려운 거면

매일매일 내 무거운 몸을 일으켜세울

동기부여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죠.


다행히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매일매일 만날 수 있는

Mini peak experience라는 것이

있습니다.


출근길에 지나친

베이커리에서 풍기는 갓 구운 빵 냄새,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를 산책할 때

나랑 눈을 맞추고 인사해준 꼬마 강아지,

회의실 창문을 열었을 때 들리는

하늘에서 재잘재잘 즐겁게 떠드는 새 소리,

퇴근길, 우편함을 열었을 때 발견한

새로 배송된 만화책을

마음콩닥콩닥대며 펼치는 시간들.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mini peak를

가지고 계실 거에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작은 경험들이

나에게 에너지와 동기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자꾸자꾸 스스로에게 일깨워주는 거죠)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mini peak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또한 일이 바빠

눈돌릴 겨를도 없는 시간에는

잘 인식을 못하게 되죠.


코칭을 할 때

Client와 sociogram을 그려보곤 합니다.


현재의 생활에서

본인에게 가까운 사람,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사람,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본인을 중심으로 그려보는

시간인데요.


이 때 client로부터

공통적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 주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라는

말이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바로

나의 정서적 지지 네트워크인 거죠.

내가 지쳤을 때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내가 에너지를 줄 수 있구요.


제가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을

하나하나씩 태클해나가는

과정에서 받고 있는

따스한 마음조력들에 대해

아주 커~~~다란 감사함을 느끼며,


제 정서지지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떠올리다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구절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어졌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안주’(북스피어).


안주 / 출처 : 알라딘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북스피어 출판사의 김홍민 대표님은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라는 책도 쓰셨고,

진짜 신나고 재미있게 책을 만드시는 분이더라구요.


저는 대표님 페이스북을 구경하면서 팬이 되었구요.

홍대 북페어에서 일부러 부스를 찾아가서

대표님 사인도 받았었습니다. ^^


북스피어 덕분에 알게 된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책이

나오는 것마다

모두모두 사모으는 것이

제 mini peak가 되었습니다. ^^


‘안주’의 내용을 잠깐 보면요.


본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만큼

너무나 크고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아픈 경험을 한

조카가 세상과 벽을 쌓으며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와한 숙부님은,


“오랜 세월 마음 속에만 넣어 두었던 일을

남몰래 이야기하고 싶은 분을 찾습니다”라는

소문을 냅니다.


조카가 자신의 문제에만 잠겨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더 밝고 넓은 세상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카에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신 겁니다.


(이 숙부님, 진짜 대단한 분이죠.

의미치료로 유명한 프랭클도

“자신을 꼭 껴안은 채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새로 만들어볼 무언가가 있는지

찾아보라"는

‘탈숙고(dereflection)’에 대해

이야기했었잖아요.


마음에 상처가 났다고 해서

그 상처만 들여다보고

아파하며 슬퍼하느라

모든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세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서

움직일 때,

오히려 그 상처가 나아가는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거죠.


숙부님이 조카에게

의미치료의 첫단계를

제안해주신 거네요.)


‘안주’는 조카가

귀기울여 들었던

이야기들 중의 하나입니다.


은퇴 후 우연히 살게 된

아름다운 수국저택에서

부부는 분명한 형체도 없고

의사소통도 안되는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렵기만 했지만,

여러가지 경험을 같이 하면서

귀엽게만 보이게 된

그 안주(あんじゅう, 暗獸

/ 어두운 곳에서 외톨이로 살고 있는 짐승

/ 미야베미유키 작가님이

직접 만든 단어라네요)에게

부부는 구로스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다가,

인간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구로스케에게 오히려 해가 됨을 깨닫고,

부부는 큰맘 먹고

저택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이야기가 많이많이 돌아왔지만 ^^;;


그때 구로스케에게

남편분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바로 emotional support network의

핵심이라고 느껴졌어요.



얘야, 구로스케.

섭섭하냐.

나도 섭섭하다.

너는 또 혼자가 되겠지.

이 넓은 저택에서 홀로 살게 될거다.


하지만 구로스케. 같은 고독이라도, 

그것은 나와 하쓰네가 

너를 만나기 전과는 다르다.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다. 

하쓰네도 너를 잊지 않을 게야.


멀리 떨어져서 따로 살더라도 

늘 너를 생각하고 있을 게다.


달이 뜨면. 

아아, 이 달을 

구로스케도 바라보고 있겠지 

하고 생각할 게다.


구로스케는 노래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꽃이 피면, 구로스케는 

꽃 속에서 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비가 내리면, 구로스케는 저택 어딘가에서 

이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얘야, 구로스케. 

너는 다시 고독해질 게다.


하지만 이제는 외톨이가 아니란다.

나와 하쓰네는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p441)



이 따스하고 다정한 언어표현을

베껴쓰면서

마음이 정말 몽클몽클해져서

눈물이 울컥 나왔습니다.


우리의 정서적 지지 네트워크에

속해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았으면 하는

말 그 자체였거든요.


친밀한 관계라고 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항상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구요.


어쩌다가 한번 만난다 해도

구로스케 & 부부와 같이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 줄수 있는 관계가

진짜 친밀한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 기회에

독자 여러분들도

현재 가지고 있는 support network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고,


그분들의 존재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의도적인 노력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구로스케와는 달리,

다시 만나면 안되는 관계가 아니니까요.)


저희 상담전문가 다섯명의

심리학관도

독자 여러분의 Support Network에

살짝 끼워주시겠습니까.


Cozy한 SUDA DABANG을

깨끗하게 쓸고 닦으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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