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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말을 못 하면 죽는 병이 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 예비신랑 영범 어머니 / 故 강명주 배우님

* 예비신부 금명 어머니 / 문소리 배우님


(금명 어머니) 우리 금명이가 막 사근사근하고 그러진 못해도 속이 깊어요. 잔정도 많고. 예쁘게 좀 봐주세요. 저는 영범이 참 예쁘거든요. 다른 게 아니라, 우리 딸이 좋아하고, (영범이가) 우리 딸을 그렇게 아껴 준다니까 그냥 정이 가고...


(영범 어머니) 금명 어머니, 제가 사실 말을 못 하면 죽는 병이 있습니다. 엄마로서 자식 위해 못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말도 못 꺼내 보고 이대로 끌려가면 평생 후회할까 싶어서요.


금명 어머니, 이 결혼 좀 말려 주세요. 아무리 아무리 도닦는 심정으로 그냥 가려고 해도. 자식 키우시니 아실 것 아닙니까. 우리 영범이는 제 인생이에요. 제 걸작이에요.


근데 죄송한데요. 나는 금명이가 안 이뻐요. 정이 안 가요. 이런 집에 기어코 보내셔야겠어요? 각자 자기 자식 맡읍시다. 어찌 되든간 한번만, 세게 좀 막아 봅시다, 예?


(금명 어머니)

금명이가 왜, 어디가 그렇게 맘에 안 차세요?


(영범 어머니) 애야 똑똑하겠죠. 근데 결혼 아닙니까. 결혼은 맞는 집안끼리 섞여야 탈이 없어요.


(금명 어머니, 눈물) 저 금명이 굶겨 키운 날 하루도 없구요. 저 하고 싶다는 거는 뭐든 다 제가...


(영범 어머니) 어려운 환경에서 그늘 없이 키운 거 같으시죠? 근데 그런 집 없어요. 어려우면 어떻게든 그늘 들지, 양지에서 큰 나무랑 같겠어요? (금명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고)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다시 웃으며) 그래도 말을 하니까 이제야 제 가슴을 짓누르던 돌을 내려놓는 것 같네요.

(계속 웃음)


(금명 어머니) 영범 어머니, 그 돌 어디다 내려놓는 건 줄 아세요? 어머니 아들 가슴에, 거기 내려 두시는 거에요.


** 심리학관 생각 : 무례함과 솔직함은 절대 같은 게 아니다. 비슷한 것도 아니다. 소리 높이지 않고 조근조근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이 다 품위있어질 리가.


얼마든지 예의를 갖추며 솔직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무례한 말과 태도를 통해 상대방에게 있는 대로 상처를 입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런데다가 '참았던 말을 했더니 마음이 시원하다' '나는 한번 말하고 나면 뒤끝 없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 사람은 그냥 무례한 사람, 다시는 상대할 필요 없는, 그야말로 관계에 있어서 얻을 가치가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온몸으로 외친 꼴이 되어 버린 걸.


* 故 강명주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너무나 근사하고 멋진 연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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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1화. 내 사랑 내 곁에.

(극본) 임상춘 작가님

(연출) 김원석 PD님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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